초콜릿 책방 이야기 -
초심자의 부끄러움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by 초콜릿책방지기

처음 책방을 열었을 때는 책방 운영에 관해서 아는 것이 없어서 정말 용감했다. 원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섣부른 사람이 무모한 법이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이 붉어지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곤 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의 나에게 가서 싸다구를 날려주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그 정도로 하지 않으면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다. 무모한 사람이 고집도 세지 않은가.)


그때는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유명한 출판사에 대뜸 전화를 걸어서 이제 막 문을 연 책방이니 도와달라는 말을 당당하게(?) 했다. 출판사 쪽에서는 또 왜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서 친절하게 사은품 같은 걸 챙겨주고 가셨는지... 나 원 참. 지금 생각해도 이유를 알 길이 없다. 작가들 북토크 행사 같은 것도 만들어서 홍보해주기도 했는데, 그저 재미있기만 했다. 그런 행사 덕분에 유명한 작가라도 책방에 오면 혼자서 신이 났고, 작가가 책이나 초콜릿이라도 사주면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책방 근처에 있는 소규모 출판사에 들러서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평생 한 번도 영업이란 걸 해본 적이 없으니 영업적 의도는 분명히 아니었다. 우리 책방의 정체성과 잘 맞는 출판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순전히 그냥 새로운 이웃으로 왔으니 인사하러 간 것이었다. 지금도 그 출판사 대표님과 가끔 길에서 마주치는데, 마주칠 때마다 내가 인사하러 갔던 그때의 그 표정이 자꾸 떠오른다. 그분의 얼굴에는 정말 이런 대사가 딱 쓰여있었다. "도대체 왜....?"


데비 텅의 카툰 에세이, <소란스러운 세상 속 혼자를 위한 책>를 보면, 자려고 누웠다가 10년 전 자신이 했던 부끄러운 행동 때문에 이불킥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으로서, 매일 얼마나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사는지 아무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잘 몰라서 저질렀던 결례들이 떠오르면 이불킥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대로 그냥 오래오래 잠들어 있고 싶을 정도다. 문제는 꿈속에서도 그런 장면들이 등장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햇병아리 책방을 위해서 출판사에서 작가님과 연결해준 적이 있었다. 작가님의 인지도가 꽤 높아서 우리 책방을 알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연결해줬던 것 같다. 작가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진행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작가님께 어떤 대우를 해 드려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출판사에서 소개해줬으니 그냥 행사만 진행하면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서울까지 오려면 2시간 넘게 이동해야 하는 지방에 사는 분이셨는데, 차비 정도에 초콜릿 선물세트만 만들어서 드렸다.(알려지지 않은 책방이었으니 참석자도 몇 명 되지 않았고, 그분들에게서 받은 참가비는 모두 드리긴 했지만 사실 턱없이 부족하긴 했다.)

작가님 입장에서는 정말 어이가 없다 못해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걸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를 떠올리면 순진한 것이 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모르고 한 행동이라고 해도 사적인 관계가 아닌, 공적인 일이라고 한다면 순진한 행동이 잘못이 될 수 있다.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른다면 미리 충분히 알아봐야 하는 것이고, 경험자에게 조언을 구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부끄러움을 여전히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내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책방 운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때의 나와 같은 사람들을 종종 만나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마주치면 그때 내게 아량을 베풀고 나의 결례를 무던하게 눈 감아주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분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고, 부끄러움을 견디며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햇병아리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 이제는 내가 품어줄 차례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종종 얼굴이 붉어지는 걸 견디며 책방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이건 절대 알코올 때문에 올라오는 홍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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