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며칠째 이어진 술자리에 힘들어하면서 책방에 앉아있다. 앉아있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곳은 참 좋은 직장이라는 것이다. 물론 숙취에 시달리면서 멍하니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며 하루를 견디다 퇴근하면 월급이 통장에 무사히 꽂혀있는 직장은 아니다. 당연히 이곳에는 알아서 꽂히는 월급 따위는 없다. 더불어 오늘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다른 날로 미뤄도 혼내는 직장 상사도 없다. 속으로 한심하게 생각하며 겉으로는 걱정해주는 척해주는 직장 동료도 없다. 그냥 괴로움과 자책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혼자 앉아 있으면 된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말이다.
그런데 맥없이 앉아 있으면 안 된다. 바깥이 훤히 내다보이는-안이 가감 없이 들여다보이는- 창가에 앉아있기 때문이다. 일단 손에 책 한 권 들고 앉아있으면 된다. 시선이 그곳에 있을 뿐 정신은 다른 곳에 있으면 된다. 가끔 바깥을 내다보다 지나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다시 책에 시선을 내리깔면 된다.(숙취로 정신 못 차리는 주제에 내가 사색하는 인간처럼 보이기를 기대한다.) 가끔 혼잣말로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인다. - 아, 책을 읽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따위 말을 지껄일 처지가 아닌데도 말이다.)
어쩌다 손님이 들어오면 잠시 기계처럼 일어나서 일을 하면 된다. 다행히(?) 손님이 거의 없다. 거의 하루 종일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눕지만 못할 뿐이다. 책을 들고만 있어도 일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제일 큰 장점이다. 진심으로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오후가 되어서 서서히 숙취에서 벗어나고 나면 조금씩 할 일이 보인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그냥 미룬다. 내일 두 배로 열심히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오늘 세상이 끝나는 게 아니라고 자위한다. 그러면서 이제는 정말 책을 읽기 시작한다. 멍하니 앉아 있는 것도 사실은 힘든 일이니까. 되도록이면 쉽게 잘 읽히는 책을 고른다. 가급적이면 웃기는 책을 고른다. 책은 널리고 널렸다. 원하는 대로 고르기만 하면 된다. 여기는 책방이 아닌가.
속으로 낄낄거리면서 읽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할 일 안 하고 빈둥거렸을 뿐인데, 책을 읽고 있었으니 겉으로는 고상해 보였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한 권을 다 읽을 즈음이면 퇴근 시간이다. 성취감이 하늘을 찌른다. 그래, 오늘 책 한 권을 다 읽지 않았나, 이 정도면 됐다, 책 한 권 읽기가 어디 쉬운가. 막 이러면서 여전히 헛소리를 혼자 하는데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부끄럽지도 않다.
이렇게 책방의 하루가 간다. 제정신으로 살지 않으니 돈이 없어도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