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책방 이야기
- 뱃살의 문제를 찾아서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by 초콜릿책방지기

봄이 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맘때쯤이면 옷차림이 고민이다. 패션에 큰 관심이 없어서인지 계절이 바뀌어도 옷을 잘 사지 않는다.(이렇게 쓰지만 진실은 돈이 없어서 사 입지 못한다고 속으로 말한다. 흑) 옷을 잘 사지 않는 사람은 있는 옷 중에서 골라서 입어야 하는데, 하루 동안 기온차가 큰 환절기의 옷차림은 항상 커다란 도전이다. 꿋꿋하게 겨울옷을 걸치느냐, 아니면 아침 추위를 견디며 얇은 옷을 입느냐. 그래서 간절기 옷차림을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패션피플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지난해에 무슨 옷을 입었는지 기억이 나면 그대로라도 입겠지만 그런 건 잘 기억하지 못하는 패션 무신경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침에 옷을 입을 때마다 당혹스럽다. 날씨 예보만 보고는 가늠이 잘 되지 않아서, sns에서 우연히 보게 된 "기온별 옷차림" 이미지를 다운로드하여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미지에 있는 옷을 다 갖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그것만으로는 겉옷 안에는 뭘 입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가끔 내 옷차림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을 보게 될 수밖에 없다.


옷차림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하긴 했지만, 사실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뱃살이 문제다. 술을 좋아하니 배가 좀(?) 나와있는데 겨울 동안은 배를 잘 가리고 다닐 수 있으니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두께가 얇은 티셔츠를 입고 나서 겉옷을 걸치고 나니 낮동안 아무리 기온이 올라도 겉옷을 벗을 수가 없다. 티셔츠 위로 드러난 뱃살이 무참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애써 모른 척하며 지내다가(옷을 계속 겹쳐서 입고 다녔다) 며칠 전 독서모임원 중 한 명이 뱃살이 늘어서 고민이라고 하더니 나도 똑같은 문제를 갖고 있지 않냐고, 무심하게 툭 말을 던졌다. 하하하, 웃으며 '저는 바지 사이즈를 늘렸습니다!' 대답을 하고 나서 급하게 배에 힘을 주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당연히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동안 적절하게 잘 감춰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또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주 잠시, 술을 끊어야 하나 생각했다. 곧바로 그건 아무래도 무리라고 인정했다. 삶의 큰 즐거움 하나를 포기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알코올을 좋아하는 만큼 '모임 중독자'이기도 한데, 매주 독서모임이 끝나고 나면 대체로 바로 헤어지지 않고 하루 종일 같이 있는다. 토요일 오전 11시에 만나서 저녁 7시에 문을 닫을 때까지 함께 있을 때도 있고 때로는 밤늦게까지 있을 때도 종종 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 헤어질 시간에 엉덩이를 가뿐하게 떼고 의자에서 일어날 법도 한데, 아쉬워서 미적거린다. 모임원 전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좋아하는 마음은 끝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문득 드는 생각이 뱃살의 원인은 알코올 중독에 모임 중독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오래 같이 앉아 있어도 지치지 않고 함께 먹고 마시고 떠드는 걸 좋아하니 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혼자 이불속에 들어가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도 들었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서, 틀어박혀서 가만히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돌고 돌았지만 결국 뱃살의 문제는 옷차림도 아니고 술도 아니도 모임도 아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그저 모른척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 슬슬 운동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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