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시작을 하고 끝을 내지 않으면 그 일은 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브런치 작가 서랍에 쓰다 만 독후감이 열 개 남짓인데 사실 그것들은 모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컴퓨터 소설 폴더에 저장해 둔, 중간까지 쓰다가 멈추고 있는 소설 몇 개는 의미 없는 끄적거림일 뿐이다. 시작만 해도 의미가 있는 일들도 분명 있겠지만, 글쓰기의 경우는 시작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글을 쓸 때 종종 시작은 맹렬하게 해 놓고 중간부터는 힘이 빠져버려서 끝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 습관이 있는 것인지, 일기를 쓸 때도 똑같이 그런 식이다.
갑자기 어느 날, 이제부터는 매일 일기를 쓰겠다고 다짐을 하고 일기장을 편다. 일단 오늘의 일기를 쓰기 위해서 한참 궁리를 하다가 제일 멋있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한 문장 쓰고 그 문장을 지긋이 들여다보며 음미한다. 그러다 보면, 이것은 일기가 아니라 하나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불쑥 솟아오른다. 일기라고 하더라도 가장 멋진 산문 하나를 완성해보리라 생각하면서 써 내려간다. 쓰다 보면 감탄의 연속이다. 글쓰기 감각을 타고난 것 같다. 그렇게 혼자 만족감에 빠져 있다 보니 금방 지친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쓸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다. 억지로 쥐어짜서 쓰다 보니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마무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서둘러 마지막 문장을 쓴다. "일기 쓰기를 다시 시작해서 나름 보람 있는 하루였다."
일기장을 덮을 즈음이면 허탈하다. 시작에 지나치게 공들이느라 힘이 너무 빠져버렸다. 그래서 다시 읽고 싶지 않은 글이 또 하나 탄생한 것이다. 시시해져 버린 글을 보니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식으로 마무리하면 제대로 끝을 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대로 끝을 맺지 않는다면 그건 완성된 무언가가 아닌 것이다. 연애처럼 말이다.
뜨겁게 시작해서 사랑에 빠지지만 어느 순간 마음이 처음과 같지 않아서 모든 것이 시시해져 버린다. 그렇다고 그냥 체념해버리면 그 사랑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열정을 유지할 수 있게 노력을 쏟아부어야 처음과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관계의 깊이가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감정이 변했다면 제대로 된 마무리를 지어야 그 연애가 내 인생의 한 시기를 의미 있게 만들어준 시간의 완성형이 된다고 생각한다.
책방 운영도 마찬가지다. 책 소개 메모를 붙여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서, 시작만 하고 지속적으로 이어오지 못하고 있다. 마음에 드는 책은 수시로 바뀌고 그 책을 표현할 제대로 된 문장들을 찾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책방 매출을 높일만한 이벤트를 궁리하다가 한 번 시도해보고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그 뒤로는 이어서 하지 않는다. 그러니 매번 근근이 이 모양이다. 시작을 했으면 어떤 식으로는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잘 이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제부터는 시작할 때 너무 어깨를 들이밀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