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책방 이야기
- 나의 아름다운 감옥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by 초콜릿책방지기

책방은 내가 자발적으로 들어간 감옥이다. 그냥 감옥이 아니라 아름다운 감옥이다. 떠나고 싶지 않고 떠날 수 없는데 또한 동시에 탈출하고 싶은 곳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과 초콜릿과 커피와 음악이 있고, 가장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며, 정해진 시간 동안 꼭 지키고 있어야만 하는 곳이다. 이 공간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술을 마실 때도 다음 날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혹시나 늦잠을 잘까 봐 악몽을 꾸게 되는 대상이다. 일주일에 6일 동안, 지금 현재 내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며 온통 신경이 쏠려있어서 마치 사랑하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또한 격렬하게 벗어나고 싶은 곳이다.


작년에는 휴가를 못 갔다. 공식적인 휴일인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쉬지 못했다. 일요일 하루는 밀린 집안일과 각종 잡무를 처리해야 하는 날이니, 쉰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그저 집에 있을 뿐이다. 가끔 바람을 쐬고 싶을 때는 일요일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왔다. 정말 간절하게 1박을 하고 싶었을 때(놀러 가서 술을 꼭 마시고 싶은 경우), 일요일 새벽에 출발해서 하루 종일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저녁을 먹으며 반주를 하고, 다음 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아이들 등교를 시키고 책방 문을 열었다. 그렇게 놀고 오면 쉬었다는 느낌보다는 극기훈련을 다녀온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래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간절해서 그렇게라도 다녀와야 했다.


어찌 보면 미련하게 보일만큼 쉴 수 없었던 이유는 당연히 불안 때문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몸에 배어있던 성실함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불안과 성실함은 자영업자가 가져야 할 기본 요소이면서 필수 요소이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어느 정도의 불안에 시달려야 하고, 남들과 비교해서 처지지 않을 만큼의 성실함은 갖추고 있어야만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옭아매고 있는 이 사랑스러운 공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관성에 젖어서 매일 똑딱똑딱 움직이다 보니 어느 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만히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멍하니 책을 보는데, 나는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만 앉아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큰 용기를 내어 하루를 쉬었다. 책방 문을 열지 않고 북촌으로 놀러 갔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란 나는 북촌이 처음이었다. 술 먹고 유흥가만 돌아다니느라 북촌 같은 곳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멀어져 있었던 탓이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핫플이 몰려있던 탓이기도 했다.) 처음 가 본 북촌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해서 관광객 모드로 걸어 다니다 보니 노는 것이 실감이 났다.


초등 저학년 아이를 픽업하기 위해서 그곳에서 점심도 먹지 못하고 부랴부랴 다시 집으로 와야 했지만, 책방이 아닌 곳에서 하루를 보낸 것만으로도 기운이 났다. 시계처럼 살았던 어떤 철학자의 이야기도 가끔 생각나지만 나는 그런 삶보다는 가끔의 일탈이 있는 삶이 좀 더 나에게 맞는 삶인 것 같다. 아무리 사랑해도 좀 떨어져 있어야 사랑의 무게와 깊이가 유지되는 것처럼 말이다.


여전히 불안에 시달리면서 책방에서의 하루를 시작하고 있지만, 일탈을 경험하고 나서는 책방의 구석구석을 좀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동안 못 본 척하던 유리창의 먼지도 닦고 새로운 일을 기획해보려고 이런저런 궁리도 시작했다. 미뤄뒀던 일도 처리하고 메일 답장도 친절하게 썼다.

사실 제일 먼저 한 일은 휴가 계획을 세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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