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책방은 번화가에 있지 않아서, 이웃 가게가 없었다. 작년에 오래 비어있던 책방 옆 공터에 번듯한 건물이 들어섰고, 위층은 살림집으로 사용하면서 한동안 비워두었던 1층에 떡볶이집을 차리면서 이웃 가게가 생겼다. 때때로 떡볶이를 사 먹으면서 잘 지내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다. 그래도 이웃 가게가 생기니 반갑고, 같은 자영업자로서 응원하는 마음도 생긴다.
생각해보면 책방의 진짜 오래된 이웃은 경로당이다. 책방 뒤쪽에 있어서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같은 건물에 붙어있어서 책방이 들어올 때부터 존재감이 상당했다. 할머니들이 공사할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항상 은연중에 관심을 기울이고 계시기 때문이다. 공사단계에서 보여주시던 가벼운 텃새는 이제 응원으로 변해서 마주칠 때마다 책방 운영에 대한 걱정을 잊지 않으신다. 하지만 막상 들어오기는 쉽지 않으신지, 가끔 너무 일찍 오셔서 문이 닫혀 있는 경로당 앞에서 서성이고 계실 때 책방 안에 들어와서 앉아계시라고 해도 선뜻 들어오지 못하신다.
그런데 오늘, 몇 년 동안 오며 가며 응원의 말씀만 해주시던 할머니 한 분이 처음으로 책방에 들어와서 커피를 주문하셨다. 이전에 가끔 화투를 칠 때 잔돈이 필요하다며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가시던 할머니라서, 오늘도 책방에 들어오셨을 때 화투를 치려고 하시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젊은 사람들이 마시는 아이스커피 한 잔만 줘봐요." 하셨다. 사위가 놀러 왔는데 한 잔 사주고 싶어서 오셨다고, 이제야 한 잔 팔아줘서 미안하다고 하신다.
미안해하실 일은커녕, 내 입장에서는 그저 고마운 일인데도 계속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커피를 사 가셨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속에는, 책방이 그냥 하나의 가게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라는 생각이 커서 그런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 친정엄마도 그 할머니와 똑같이 행동하시기 때문이다.
친정엄마는 책방 앞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계시는데(그래서 책방 문을 언제 열고 닫는지 항상 감시하고 계신다), 아파트 주변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는 사과장수 아저씨, 야쿠르트 아줌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신다. 뭐라도 하나 사야 하고, 정 필요가 없으면 가방에 있는 사탕이라도 나눠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가끔 그런 것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고 상대방이 과연 좋아할까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어쩔 수가 없다. 동네에서 장사하는 사람의 물건을 팔아줘야 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도저히 말릴 수가 없다.
이제야 나도 친정엄마의 그런 행동이 이해가 되지만, 프랜차이즈에 익숙한 세대로 살아온 데다 동네에서 누군가 나를 알아보는 것이 반갑기보다는 어쩐지 불편한 마음이 더 큰 쪽에 속하는 소심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이전에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냉장고에 제때 먹지 못한 과일이 아직 쌓여있는데 또 사과 한 봉지를 사고, 수시로 야쿠르트를 한 봉지 가득 사서 아파트 경비아저씨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불필요한 소비로만 보였고, 엄마의 그런 소소한 구매행동이 그분들에게 큰 보탬도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안다. 커피 한 잔 사러 이곳까지 와주는 손님들과 작은 서가에서 책을 한 권 골라주는 손님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기 때문이다. 돈을 얼마나 쓰느냐를 떠나서,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과 작은 책방을 응원하는 마음들은 종종 책방 운영에 회의가 생길 때 나를 붙들어 일으켜준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책방을 유지하는 일은 힘든 일이라서, 때때로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럴 때 이곳까지 발걸음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 마음을 생각하다 보면, 그런 마음을 받아본 적이 없는 엄마가 어떻게 알고 나눠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나도 받은 것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웃을 걱정하고 함께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은 나의 정신을 건강하게 살찌우는 생각인 것 같다. 나만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생각과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잘 되고 싶다는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어떤 사람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좀 있다), 이웃이 나의 안위를 신경 써준다면 나 또한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생기게 되고, 그런 마음은 이웃과 경쟁하기보다는 함께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만들어준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면서 함께 살아간다면 누가 더 잘 살고 못 살고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마음은 내가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아주는 닻이 되어줄 것 같다.
아마도 경로당과 계속 이웃으로 있는 한 그 마음을 잊을 일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