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여름은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다. 취향이나 의견이 그리 확실하지 않은 나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나와 달라서 좋다. 초록이 무성해서 초록빛을 보다 풍성하게 보여줘서 좋고, 다른 계절에 비해 하늘은 더 파랗고 구름은 좀 더 분명한 흰색이다. 비가 내리는 것도 더 힘차고 확실하다. 더위 덕분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다닐 수 있고, 그런 옷차림은 꾸밈이 덜하다는 느낌이 든다. 걸쳐 입는 것이 적으니 좀 더 단순하게 보이기도 하고 자유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름은 책을 읽기에 좋은 계절은 아니다. 몇 장 읽다 보면 자꾸 딴생각을 하게 된다. 시원한 음료 한 잔 마실까, 저녁에는 맥주를 한 잔 할까, 주말에 계곡에 발이라도 담글까,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썬배드에 누워서 읽는 것이 더 좋을까, 옆에 시원한 맥주가 있으면 금상첨화겠지, 맥주 마시면서 올림픽 경기를 하나 정도 보는 것도 좋겠지, 등등. 이상하게 자꾸 놀 생각만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여름은 정말 놀기 좋은 계절이라서 책 읽기 좋은 계절은 아니다.
그런데 책방 독서모임 목록은 갈수록 난이도가 상승 중이다. 한 번 읽고는 도저히 의견을 만들어낼 수 없는 책들이 수두룩하다. 대부분의 책들이 미리 한 번 읽고 나서 모임 전에 한 번 더 읽어야 간신히 내용이나 의미를 정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 책들을 가지고 매주 모임을 하고 있으니, 딴생각을 하면 시간이 쫓기게 된다. 우리 토요 독서모임인 "위태로운 북클럽" 책 말고도, 논술 지도를 위한 책이나 책방 일 때문에 읽어야 할 책들도 쌓여있다. 일주일에 적어도 세 권은 읽어야 하는데, 자꾸 딴생각을 해서 밤에 후회를 한다.
꿈같은 소망이지만, 유럽처럼 여름 한 달은 휴가였으면 좋겠다.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한 달을 쉰다면 어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좋다. 한 달 정도 쉬고 나면 미친 듯이 일을 하고 싶어질 것 같다. 아무리 바깥에서 초록색 이파리들이 유혹을 해도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열심히 책을 읽을 것 같다. 아무래도 한 달 놀고 나면 노는 게 지겨워서라도 일을 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노는 것도 한 달 정도 되면 어느 정도 일상처럼 되어버리고 아마도 루틴이 생겨버릴 테니 색다를 것이 없어질 테고 그렇다면 그 시간의 매력은 사라질 것이고 종국에는 놀지 않는 시간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노는 게 못 견디게 지겨워진 순간, 일을 시작하게 되면 일이 마치 놀이처럼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사실 얼마 전에 휴가를 다녀왔는데, 더 놀고 싶은 걸 보니 휴식을 위한 시간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코로나 시대에 팔자 좋은 소리 같지만 지금이 산업화 시대도 아니고, 노동시간이 길다고 해서 더 많은 성취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건 이제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물론 자영업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지만 말이다.)
책을 읽다가 딴생각이 길어지니,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게 된다. 그래도 휴가를 다녀오고 나니 책방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고, 인간에게는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약간의 휴가 후유증을 극복하고 나서, 이제 다시 책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