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공부 관찰일기 3
한쪽 벽면에서 햇볕이 쏟아져 내리는 교실에는 마주 앉은 상대방이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가 유지되는 기다란 원탁이 있고 그 원탁을 따라 대략 열두세 명의 사람들이 앉을 수 있다. 햇볕이 바로 내리쬐며 칠판과 제일 가까운 곳, 학생들이 별로 즐겨 찾지 않는 그 위치는 바로 나의 지정석이다.
그곳에 앉아 가방에서 노트와 볼펜을 꺼낸 다음 하는 일은 다리를 꼬는 일. 그리고 허리를 의자 등받이에 살짝 기대고 턱을 살짝 쳐들기.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거만한(?) 모습이다. 수업을 듣기 전에 나는 마음을 그렇게 정돈한다.
독일어를 못한다는 열등감은 외국인들 사이에서 나를 자꾸 주눅 들게 한다.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았도 내 표정은 미안함과 민망함이 섞여 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해지고, 아무도 볼 수 없고 나만 느낄 수 있는 내 마음은 한 없이 쫄아든다.
독일어를 못하는 건 죄가 아닌데, 같은 수업을 듣는 다른 사람들도 한두 명을 제외하고 그 수준이 거기서 거기 이것만 나는 잘하지 못함을 유난히 부끄러워한다.(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반에서 내가 독일에서 제일 오래 살긴 했다;;) 모르는 걸 물어보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데, 나는 질문하는 것도 어려울 때가 많고 선생님의 길고 빠른 독일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 남들처럼 '나는 지금 네 말을 모르겠는데'라는 아무렇지 않은 때론 뻔뻔한 그들의 표정을 감히 따라 할 수 없다.
독일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것은 이곳에서 나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내 안의 숨어 있는 못난 모습을 버릴 수 있는 방법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의 거만함을 억지로 만들어 내 모습에 고정시킨다. 내 안의 쫄보를 들키기 전에 지우고 싶으니깐.
내가 독일어를 잘하고 싶은 이유는 내가 독일에 있기 때문이라는 건 누가 봐도 당연하다 생각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여기 사람들과 잘 융화돼서 그들처럼 외국인(?)스러워지고 싶다. 사람이 경쟁이나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잘하는 것, 결과가 좋은 것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 보여도 칭찬하고 칭찬받을 수 있는 삶의 모습 중 하나라는 걸 알려주는 그들의 모습말이다. 내가 만난 독일인들, 내가 관계 맺고 살아가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교포들은 대부분 그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독일어 실력이 늘어나면 그들의 좋은 태도까지 내 삶에 스며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