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왔던 순간들 돌이켜보면
그 길에 갈림길이 있었던가
나의 앞에는 언제나 딱딱히 굳어진
화석 같은 길만이 있었다
때로는 산맥이 육중한 몸을 누이면
나 역시 그를 돌아가기도 했고
이따금 맑은 개울이 차르르 흘러
가는 길 살며시 붙잡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길은 언제라도 어디에서도
하나만이, 그리고 나만이 있었고
그 길 끝에서 희망컨대 기다릴 그대가
나를 맹목적으로 걷게 하였다.
다리가 있기에 내딛는 걸음들
걷기 위해서 걷는 발자국들이
마음 위 덧칠되어 메아리친다
끊임없이 별을 보며 저어가던 뱃사공이여
어째서 그대의 눈은 더 이상 하늘이 아닌
이끼 낀 강바닥만을 바라보는가
쑥스러운 나의 두 다리야
적당한 네가 이끄는 적당한 이 길 끝
우연한 임을 어쩌다 보니 사랑하는 건
매 걸음마다 감격을 앗아가는 익숙함
고르어 가는 숨만큼 능숙해지는 것
그 무엇 때문도 아닐 것이리라
추신: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고 열망하는 이유가 항상 그것을 사랑하거나 그것에 능하기 때문은 아닌 듯합니다. 어쩌면 꿈이란 그리 고상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서 발현된 주광성이나 굴광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