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찬비가 추적추적 적셔와
맨발로 흙길 위를 걸어보고 싶을 때
익어가는 대추의 껍질을 씻어주듯
일상에 부대낀 마음을 닦아내고 싶어진다.
길 한 편, 갈댓잎에 맺혀 흐르는 빗방울
바다에 가득 담겨 있는 그리움은
하늘로 떠올라 끈끈히 엉겨가고
청명히 웃어넘기던 나날이 모여
대지를 짓누르도록 응어리진 구름이 되었나
멍하니 떠다니기에는 버거워진 제 무게에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날리는구나
한때는 이상할 정도로 맑기만 했기에
이제야 미뤄둔 흐느낌이 새어 나오는 걸까
우산을 거둔 경청의 자세로
축축한 하소연을 귀담아듣는다.
청개구리가 전해준 말 못 할 사연도
아직은 푸르른 잎맥에 쓰인 편지도
물먹은 솜털 같은 마음에 새긴다.
산의 눈망울에 고인 호수의 바닥도
침전된 생명이 유영하는 해저도
우주를 숨겨둔 하늘의 마음보다는 얕을 텐데
대개 푸르른 빛으로 화답하는 것도
너의 상냥함으로부터 비롯되었으니
두꺼운 구름을 덮어쓰고 우는 버릇도
상처 줄 용기조차 없는 무해함
쾌청한 미소라던가 우중충한 고민이라던가
몰아치는 진노로 시려오는 서러움으로
일주일 너의 일기를 가득 채워주렴.
너의 빗물을 머금고 자라난 생명을
다시 너에게로 돌려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