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잡을 손이 없어 먼지가 쌓인 문손잡이라던가
퍼 놓고도 다 식을 때까지 줄지 않는 밥이라던가
앞서 쌓인 섬유의 지층과는 사뭇 다르게
삐뚜름하게 개켜진 셔츠라던가
아슬아슬하게 반복되던 일상의 불협화음이
어쩌면 새로운 세상에 맞춰진 협화음이
전조(前兆)도 없이 다가온 전조(轉調)가 낯설다
여름의 전주는 매미의 독주이듯
나의 하루의 첫 장은 그대가 넘겼었는데
한층 줄어든 가사(家事)의 볼륨이 정적을 잉태해
떠난 어미의 품을 찾듯 괴괴히 울었다.
부끄럽지 않은가
세상 모두가 너를 두고는
저벅저벅 앞으로만 걸어가는데
절름발이 같은 처량한 나의 영혼은
뒷걸음질만 치고 있는 모습도
하나 뒤로 넘어져 부서지진 않은 것도
어디로든 발을 뗄 결단이 남은 것도
지긋이 등을 밀어주는 바람이 있다
이대로 앞으로 내달려서
체온보다 살짝 서늘한 서풍의 손끝마저
영영 느낄 수 없게 된다면
나는 풀썩 쓰러져버릴지도 모르지만
바람을 느낀다는 건 가는 길을 막는다는 것
옆으로 비키어줄 때 귓바퀴를 매만진 휘파람은
연어를 보내는 울음소리인 줄 알았더니
먼 길 돌아온 제비를 반기는 웃음소리였구나
자, 걸음마부터 다시 떼 보자꾸나
당신이 남긴 상흔이 채워지도록 새 삶 돋도록
그리움을 추억으로 화하여 삼키어 가는
우리의 마지막 합주곡을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