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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Jun 08. 2020

(1) 통곡의 회사생활



오늘도 역시 서럽게 울면서 출근했다.


 1년 전, 막학기를 앞둔 나였다. 대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취업을 하면 2학기는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대학교 친구들이랑 싸울만큼 싸워버린 난, 나는 더이상 이 대학교에 다닐 힘이 남아니질 않았다. 차라리 취업을 해서 이 학교를 조금이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첫 단추가 여기서부터 잘못 꿰어진것같다. 그래. 그때 면접을 보자마자 "내일 부터 출근하세요" 라는 말을 해준 회사에 의심을 가졌어야했다. 아니다. 사회생활 경험치가 0인 나에게, 인수인계 및 사무적인 업무 일을 디렉팅 해줄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은 내 잘못이다. 아니야. 그냥 내가 번쩍번쩍 빛이 나는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버려 "여기라도 어디야"라고 생각한게 끼워야할 단추가 엇 나가버린 시발점인것같다.


[첫 번째 회사 - A]


 대학교를 도망치듯 급하게 입사한 회사는 우리 지역에서 40년 동안 운영된 작은 구멍가게였다. 작은 가게 안에서 현수막, 명함, 책 등등 다양한 걸 만들었다. 가끔 도장도 팠다. 화장실은 푸세식 화장실을 썼다. 쭈구려 앉아 쓰는 변기통 옆, 벽에 달린 기다란 줄을 당기면 화장실 물이 내려갔다. 비가 오는 습한 날이면 꼽등이와 바퀴벌레들이 나타났다. 컴퓨터는 포토샵이 돌아가는게 신기할 정도로 쿠쿠쿠쿵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자연인을 꿈꾸던 60대 사장은 사무실에서 1시간 30분이 떨어진 산골짜기에 살고 있었다. 자연과 함께 살아 행복하다던 사장은 폭설과 폭우가 내리는 날엔 산속에 꼼짝없이 갇혀 출근하지 못했었다.

 그 해 겨울 이례적으로 우리 지역에는 눈이 정말 많이 내렸었다. 당연히 사장은 출근하지 못했었다. 사장이 없는 날이면 노래를 크게 틀고 40살이 조금 넘은 실장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 실장님은 신경성 장염을 가진 마른 체질의 남성이었다. 그리고 정말 말이 많았다. 나는 그의 말을 배경음악 삼아 늘 대충 들었다.


 날이 좋아 사장이 출근하는 날이면 지옥이 따로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그 상권에서 성격이 포악하기로 유명했었단다. 나만 그 사실을 몰랐다. 사장은 시원하게 방귀를 여기저기 뀌고 다니고, 마음에 안 들면 소리를 질렀다. 더불어 본인이 부산 조폭 출신이라며 자랑을 하곤 했다. 조폭 출신이라는 말은 조금 거짓말 같았다. 뭐 어디 두목의 오른팔이라고 했나.. 왼팔이라고 했나.. 


 아무튼, 한 번은 사장의 잔소리에 두피가 저릿저릿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었다. 퇴근 후 씻고 면봉으로 귀를 후볐더니 귀에서 피가 났었다. 사람이 '싫은 소리를 들으면 귀에서 피가 난다'는 말은 재미로 하는 소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난 이 정도라서 다행이었던 걸까. 앞서 말한 나와 함께 일하던 실장님은 스트레스로 인해 영양실조에 걸려 한동안 회사를 나오지 못했다. 실장님이 심신 안정을 위해 집에서 쉬는 동안 난 가게의 총책임자가 되어 일을 했다. 정말 힘들었었다. 그때 겨우 3개월 밖에 일을 하지 않았었는데. 


 격한 겨울이 지나고 해가 지난봄, 벚꽃이 내 마음을 간지럽히던 날. 여우 같은 봄기운은 나에게 알 수 없는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이상하게 대기업에 들어갈 수있을것같았다. 마침 H사에 사람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고작 1차 서류 합격을 하고 난 뒤에, 대기업 계약직으로 벌써 입사한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작은 구멍가게를 관두기로 결심했다. 예상했던 대로 성격이 포악한 사장은 나를 그냥 보내주지 않았다. 결국 나도 폭발했다. "나한테 신경 꺼라"라며 소리를 쳤고, 사장은 "딸같아서 그런다!"라고 대답했다. 난 "그쪽 딸한테나 그러시라"며 소리를 쳤다. 엉엉 울면서 출근했던 나는 엉엉 울면서 퇴사까지 하게 되었다. 그게 내 첫 사회생활의 기억이다.


[두 번째 회사 - B]


 회사를 아무 곳이나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걸 그때 알았어야 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B회사에 면접을 보러갔다. 면접 진행 중 해당 사무실의 고양이(직급 : 대리)께서 내 손등에 뽀뽀를 해줬다. 그 모습을 본 B회사 사장님은 '냥 대리'가 직원을 골라주었다며 나에게 다음 주부터 출근을 하길 권하셨다. 그 회사는 2주 만에 뛰쳐나왔다. 사장 부부가 싸움을 했는데 나중에 화해하고 나서는 다짜고짜 나보고 "너 때문에 우리 싸운 거 알고 일하니?"라고 말했다. 그때 "아 이 회사 심상치 않는구나" 하고 나왔다. 글을 적는 이 순간에도 B회사의 명칭이 기억나질 않는다. 


[세 번째 회사 - C]


3번째로 들어간 C회사는 지역 행사/마케팅 회사였다. 한 여름인 8월에 입사를 했을 당시, C회사는 해수욕장 쪽에 행사/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주로 여름 바다엔 독성 해파리가 자주 출몰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는 풀장을 바다 옆에 따로 마련해 회사에서 관리하고 운영했었다.

 그때 사무실엔 딱히 일이 없었다. 다들 해수욕장 업무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한 번은 바다에서 일할 인원이 부족하다며 지원팀이 필요하다 연락이 왔다. 혈기왕성했던 나는 지원하겠다며 당장 손을 들었다. 그렇게 8월 내내 소금 바람을 맞으며 사무실이 아닌 바닷가로 출근을 했다.


 그때 기획팀 '하 팀장님'을 알게되었다. 하 팀장님은 눈, 키, 목소리가 모두 큰 5살 차이 나는 언니였다. 똑같이 지원을 나온 기획팀 하 팀장님과 나는 바다에서 일하고 있는 대외 팀원들을 위해 밥을 했다. 또, 청소도 하고 아침마다 마트에서 필요 물품을 구매해 전달했다. 난 밥도 못하고, 운전도 못했기에 하 팀장님 옆에 콕 붙어서 하루 종일 징징거리기만 했다. 사실 그때 생각하면 팀장님께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3번째로 들어간 C회사에서 3개월을 버티고 퇴사를 했다. 퇴사 이유는 뚜렷하게 2가지였다.

첫 번째, 매달 밀리는 임금 문제. 두 번째, 내 옆 사수의 위생. 내 옆자리에 앉은 사수가 매일 직원들 몰래 엉덩이를 긁고, 긁은 손을 코에 가져다 냄새를 맡는 게 흰자로 보였다. 너무 고통스러웠었다. 정말 너무 고통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도!! 으악!! 하 팀장님께 이 사실을 고하였더니 빵터지시면서 내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으시는 듯 했다. '그 분은 사타구니가 매우 가려우신 것 같으니 사타구니 약을 권하면서 눈치를 주는게 어떠냐'고 말해주셨다. 악!


  퇴사를 했었어도 하 팀장님과의 인연은 놓치고 싶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연락을 했었다. 팀장님과 나는 엄청난 개인주의자였기 때문에 적당히 거리를 두고 연락을 간간히 취했다.(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퇴사하고 D회사 입사한 그 해 겨울. 하 팀장님께 연락이 왔다. 잠시 카페에서 볼 수 있냐고. 그 주에 약속이 생기면 약속 전날까지 아무런 약속을 잡지 않는다는 팀장님의 귀한 연락에 난 흔쾌히 허락했다.


여름이 지난 그 해 겨울 크리스마스 전, 카페에서 만난 팀장님은 다니던 C회사를 관둔 후였다.


 우리의 대화 내용은 이랬다. 내가 나간 후 C회사는 자정 난으로 내가 있던 디자인팀을 없앴고, '하 팀장'님은 퇴사를 했다. 팀장님은 퇴사 후 호주로 떠난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호주에 캥거루가 유명한지, 코알라로 유명한지 관심도 없었다. 24년을 살면서 호주라는 말을 10번도 안 했었다. 나는 중국어도 잘하고, 경력도 탄탄한 팀장님이 호주로 가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하 팀장님은 자신의 버킷리스트였다고 대답하였고, 내년이면 29살이 되는데 29살이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마지노선 나이라고 설명을 해줬다.

 잘 다녀와란 말을 건네고 그다음 해에 내가 25살이 되던 날 29살이 된 '하 팀장'님은 계획대로 시드니로 떠났다.


  C회사를 나오고  D회사로 이직 한 나는 11개월을 겨우겨우 일을 했다. D회사 사람들과는 성격이 너무 맞지 않았다. 대표가 '특전사'출신이라 회사에 군대문화가 필수적이라며 직원들에게 엄격하게 군대문화를 주입시켰었다. 그게 나랑 안 맞았던 걸까. 특히 식사시간엔 밥 속도가 안 맞으면 화를 내고, 밥만 먹어도 화를 냈다. 속이 안 좋아 밥을 안 먹는 날에는 단체생활에서 밥을 같이 안 먹는 게 말이 되느냐며 화를 냈다. (그 뒤로도 난 편하지 않은 사람과 밥을 먹는걸 힘들어한다.) 억지로 견디면서 일을 하는 바람에 정신이 피폐해진 채로 도망치듯이 D회사를 퇴사했다. 




 4번째 퇴사를 한 날 생각했다. 1년 동안 무려 4번의 회사를 이직하는게 맞는건가? 정상인가? 아니면 내가 문제인 걸까? 회사가 문제인 걸까. 남들은 몇 년이고 잘 지내던데 난 왜 이렇게 오래 있지 못하는 걸까.

4번의 이직을 겪는 동안 나도 모르게 겁이 나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신입일때 히트를 쳤던 책 제목 처럼 아프니까 청춘인걸까?


누구와도 연락하고 싶지 않아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집에만 박혀 있었다.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지금은 겨울이니 봄이 오면 다시 일어나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겨울잠을 잤다.

일어나면 밥을 먹고 다시 누워 자는 걸 반복했다. 돈도 더 이상 벌고 싶지 않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호기심도 떨어졌다.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밖에 나가는 횟수도 적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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