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올 시간

D68: May 23rd, 2021

by 쓰는 사람

갑작스레 한국에 다녀왔다. 지난 해 말부터 지지부진했던 현승의 치료를 더이상 두고 보다가는 괜한 병을 키우겠다는 생각에 몇달간의 망설임을 접고 출국 3일 전에 비행기표를 끊고 PCR 테스트를 받고 자가격리 숙소를 예약하는 부산을 떨었다. 그리도 붐비던 공항은 개점 폐업 상태인 듯 한산했고 당일 오후 출발 예정으로 전광판에 떠 있는 비행기가 3대 뿐이라 신기해하며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뜻하지 않게도, 좋아하는 벚꽃이 예쁘게 핀 3월 말에 한국을 방문하는 호사를 누렸지만 자가 격리를 끝내고 세상에 나오니 꽃이 다 져버려서 참 아쉬웠다. 하루도 빠짐 없이 이 병원 저 병원 한국에서 제일 잘 한다는 선생님들을 만나러 다녔지만 의사마다 조금씩 엇갈리는 진단과 당장 뾰족한 수는 없다는 김빠지는 설명에 참 우왕좌왕 했다. 다행히 한 곳에서는 꾸준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현지 의사가 어이 없게 건드려놓은 (한국에 가기 전까지 그 상태로 처치를 해 놓은지도 우리는 알지도 못했던) 부위를 갈무리 하는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하루에도 몇가지 결정을 끊임없이 내려야 하는 긴급 상황을 헤쳐나가는 동안 때때로 싸우기도 했지만 드디어 우리가 한 팀으로서 조금은 더 무르익어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기껏해야 1년에 한번 볼 수 있는 양가 가족과도 조금은 더 가족답게 편해질 수 있었다.


결혼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부끄럽게도, 결혼이란건 나에게 이득만 주는 결정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나의 시간과 성취는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다만 결혼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안정감이나 법적인 보호망 따위만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그렇게 살아가리라 다짐했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덧셈과 뺄셈을 하느라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 내가 이만큼 포기했으면 이만큼은 받아야 하는데 내 결혼생활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상대를 탓하고 짜증내며 보냈던 시간도 길었다. 한국 시간과 매일 주어진 병원 스케줄에 맞춰 살아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정신을 차려보니 학교의 시간표로는 어느새 한 학기가 끝났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남은 학기 동안 논문을 열심히 마무리 해서 여름에 졸업하겠다는 결심이 요원해진 것 같은 지금, 꼬박 2달을 잡아먹은 한국행을 결심하기까지 망설임이 하나도 없었다면 거짓말이었겠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 혼자 한국에 잘 다녀오라고, 치료 잘 받고 오라고 쿨하게 바이바이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똑똑하게" 내 것만 챙겨서는 내가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너와 나의 시간과 노력을 주고 받으며, 가끔은 손해 보는 듯 가끔은 이득을 보는 듯, 상대방이 행복해지지 않으면 나도 행복해질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을 보살피며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야만 결국 나도 안팎으로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효율"적인 길에서 벗어나 멀리 돌아가야만 했던 많은 결정들이 나에게 가져다 준 삶의 다채로운 색깔을 안다. 또 그렇게 함께 걷다보면 모르는 새 지름길로 작은 성취들에 도착해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삶의 태도가, 내가 의심해마지 않았던 기혼자들의 변명같은 것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과 결이 일치한다는 확신이, 이제는, 있다.


지난 두 달은 매일 나를 다그치며 힘들게 겨우 붙잡아야 했던 글쓰기에 잠시 쉼표를 찍을 수 있었던 계기인 것 같다. 아직도 삶을 모르겠냐고, 누군가가 내게 벌처럼, 상처럼, 내린 시간인 것 같다. 내 일 이외의 것에 온통 신경을 쓰며 일단락 짓고 집에 돌아와 푹 쉬고 나니, 이제는 정말로 자연스레 나의 프로젝트로 돌아갈 준비가 된 것 같다. 이 시간이 벌이 될지 상이 될지는 지금부터의 나의 시간에 달려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웠던, 나의 공부방에서 나의 생각들과 문장들에 집중하는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시간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소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