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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 인생은 역시 마라톤인가

결론은 나만 잘하면 돼

by 지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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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직을, 그녀의 인턴 졸업을

오늘 거의 같은 시간에 두 가지 뉴스를 들었다.


친한 전 직장 동료였던 A가 이직을 하게 됐다는 소식과

지금 직장 동료 B가 ‘인턴’을 떼고 계약직이 됐다는 소식


A는 적절한 시기에 ‘기렉시트’를 했다. 글만 써오던 그녀가 멘붕에 빠진 건 ‘숫자’를 만지는 일을 하면서부터. 난생 처음 해보는 일들이 주어졌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모른다고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배우려고 달려들었다. 그렇게 버텼더니 새로운 길이 열렸다. 기회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찾아왔고 그녀는 매우 자연스럽게 세 번째 이직을 맞이했다.



B는 9개월 째 인턴기자를 했다. 20대 초반, 똘똘하고 열정도 넘친다. 처음엔 6개월만 일하기로 했다. 놓치기 싫은 사람이었다. 3개월을 더 연장했다. 그리고 결국 6월 1일부터 계약직, ‘인턴’을 뗀 ‘기자’가 된다.





‘기자’가 못 될 바엔... C의 용감한 선택

두 사람의 소식을 듣고 생각난 건 3년 전 퇴사한 C였다. ‘기자’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우리 회사에서 햇수로 3년을 ‘에디터’로 버텼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초강수를 뒀다. 회사 대표를 만나 ‘기자 안 시켜주면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말했다.



회사는 완강했다. 죽어도 ‘기자’ 명함은 못 파주겠다고 했다. 그게 뭐라고. 처음 1년에는 잘 하면 ‘기자’가 될 수 있다고, 그다음 1년은 ‘회사와 논의 중’이라고 시간을 끌더니 마지막 3년엔 ‘불가’ 판정을 내렸다. 회사를 나가겠다는 그녀에게 사측은 “에디터와 기자가 하는 일이 똑같은데 굳이 무슨 상관이냐”고 개소리를 시전하며 설득을 하려고 했다. 반대로 그럼 하는 일이 같은데 ‘기자’라고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B는 9개월을 일하고 ‘인턴’을 뗀 기자가 됐는데... (참고로 B와 C의 거취에 대한 결정권자는 다른 사람이다)



3년을 희망고문만 당한 C는 결국 손을 들었다. ‘작가’의 꿈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웹드라마 공모전에 도전했고, 업계 1위라는 웹드라마 제작사에 작가로 들어갔다. 공모전 특전 중 하나가 ‘웹드라마 제작’이었다. 그렇게 입봉을 마친 그녀는 현재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하이브’에서 일하고 있다.



따져보면 A의 전화위복은 만으로 3년이 채 안됐고 C는 회사를 나가자마자 공모전에 입상했다. 다시 글을 쓰고 싶다고, 다시는 기자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절망하던 A, 기나긴 희망 고문으로 문드러진 가슴을 안고 회사 문을 박차고 나간 C. 결국 돌아 돌아 마음에 스크래치는 약간 생겼을지언정 지나고 보니 다 잘된 일이었다. A가 다시 기자를 했으면, C 역시 ‘에디터’에서 ‘기자’가 됐다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었을 거다.




그런데, 왜 나는 아직 이 자리에

이런 소식 저런 소식을 접하는 내내 나는 5년째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 침몰하는 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움직일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건 1 게으르거나 2 능력이 없거나 3 열의도 없거나 4 무책임하거나. 사실 나는 이 네 가지 전부 해당하는 것 같다.



누구나 이다음을 생각한다. 아니 틀렸다. 누구나 이다음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건 인지하지만 이다음으로 자의에 의해 나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멈춰만 있으면 다행이지. 점점 도태되가고 있음을 느낀다. 느끼기만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자괴감만 느낀다.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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