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입을 다물었다면, 뭐가 달라져 있을까?
인생이 참 내맘대로 안된다.
그래서 더이상 열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퇴보라고 할지언정,
내 마음이 편하면 그걸로 됐다.
열 내지 않는다고 마음이 편할지는 모르겠다만.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그게 아니더라.
모든 관계, 모든 무리들은 목적을 가진다.
공동의 목적이 사라지거나 희미해지면
집단을 묶고 있던 구심력이 약해지고
흐지부지 곧 와해된다.
영원할 것 같던 관계는 시들해져 간다.
남녀 관계는 사랑이 식었다고 설명하면 되는데
우정은 그 이유나 과정을 설명하기가 너무 어렵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됐을까?
이 질문 자체가 혼자만의 생각, 착각일수도 있다.
나만 혼자 유난 떠는 일일 수 있다는 생각에 더 힘빠진다.
나이를 먹는 건 조금 외로운 일인 것 같다.
예전처럼 열을 낼 일도 없거니와 여력도 없어진다.
남 앞에서 내 의견을 피력하는 일도 이제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이고
외려 화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그 화라는 것이 그다지 큰 일은 아닐 수 있다.
처음엔 한발짝 멀어진다. 거리감은 점점 커지고 결국 놓아버리게 된다.
그러고는 생각에 빠진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되짚어보면 내 탓인것만 같다. 아니, 내탓이다. 내가 열을 내서.
상대는 그게 싫고 부담스러웠나보다.
아니면 애초에 결이 다른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친해질 수 없는 그런 두 사람인데 어쩌다보니
전략적 친구가 됐다가 공동의 관심사, 공공의 적이 사라지고는
서로의 본질을 깨닫게 된 거다.
어차피 친해질 수 없는 사람들이었구나, 생각해버린다.
아니면 내가 열을 내지 않고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했다면, 가정해본다.
그랬다면 나는 그 관계에서 행복감을 느꼈을까.
내가 그 사람을 진정한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곧장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고 확신이 없어진다.
힘이 빠진다. 끝없이 답 모를 질문들만 스스로 하고 앉아있다.
그냥 놓아버리면 될 것을.
그래도 모든 관계에서는 배울점이 있다.
그래서 나는 더이상 열내지 않기로 했다.
이제껏 열 내며 살아왔으니, 앞으로는 그러지 않아보기로 했다.
내 자신을 가리면서 만든 관계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그런 관계에서 나는 진정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지
큰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참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