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7년차 파데프리
안경 선배에 이어 안경 아나운서가 등장했다.
오늘 하루 온라인에서 이슈를 끈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위의 여인.
이름은 모른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딱 저 이미지 한장이면 충분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중요한 단서) '같은 여자로서가 아니라 그냥 한명의 인간으로서' 이게 과연 기사가 될만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고민하다 용기를 낸 결과"라는 기사 속 그녀의 말이 뇌리에 깊이 남았다.
나는 8년차 직장인이다. 직업 특성상 복장이 자유롭다. 그리고 여자인 나에게 화장을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사회 초년 생 때 딱 1년 화장을 하고 회사에 출근했다. 그때도 비비크림이나 파운데이션 정도 바르는 수준이었다. 딱 1년 가더라... 그마저도 귀찮아서 하지 않게 됐고 지금은 자외선차단제도 겨우 바르고 다닌다.
사실 파운데이션을 바르지 않게 된 건 단지 귀찮아서였다. 파데프리라는 용어가 한국 사회에 퍼지기도 훨씬 전의 일이니 나의 결정과 행동엔 다른 어떤 이념이나 철학도 들어있지 않았다. 단지 아침에 일어나 몸뚱이 가누기도 힘들어서 자연히 화장하는 일에 소홀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파운데이션을 바르지 않는 것이 여성들의 권익을 요구하고 여성 불평등에 대한 반항의 표현이 됐다는 것이 무척 놀랍다.
저 안경 아나운서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게 된다. 여자가 안경을 쓰고 뉴스에 출연하는 것이 이렇게나 놀랄만한 일인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근데 이것 또한 애매한 구석이 있다. 나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앞서 밝혔듯 화장을 안한다. 렌즈는 더더욱 안낀다. 시력이 매우 나빠 스스로를 눈뜬 봉사라고 칭할 정도다. 하지만 출근할 때 렌즈를 끼는 일은 세달에 한번 정도다. 주말엔 렌즈를 종종 낀다. 안경을 끼는 이유? 화장을 안하는 이유와 같다. 귀찮다. 그리고 아프다. 퇴근할 때쯤 되면 눈이 너무 건조해 빨갛게 충혈이 된다. 안경을 끼고 출근 한지도 벌써 3년째가 다 돼 간다. 정리하자면 나는 순수하게 이기적인 마음에서, 화장하는 것은 귀찮고 렌즈는 아프다, 라는 단순한 이유로 파데프리에 안경을 쓰고 바깥을 활보한다.
자, 그럼 앞서 중요한 단서라고 표시한 부분으로 다시 이야기를 돌려보자. 나는 <같은 여자로서가 아니라 그냥 한명의 인간으로서>라는 것을 중요한 단서라고 이야기했다. 나로서는 화장을 하지 않고 렌즈를 벗어던지고 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파데 프리를 선언하고 안경을 착용하고 다니는 여자들을 유별난 여성 해방 운동가들로 폄하하거나 비꼬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나 자신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면 파데 프리나 안경 착용, 노브라 따위의 일들이 마치 큰 일이라도 되는 양 해석되는 지금의 분위기가 낯설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냥 내가 편해서 하는 일인데 어떤 무리들은 그걸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그러니까 개인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고 단순하게 A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전부 싸잡아서 한 뭉텅이로 생각하고 몰아붙이는 일은 또하나의 폭력이라는 말이다. 그런식으로 오해 받는 건 어떤 이유에서건 싫다.
이시점에서 또 눈치 빠른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할 거다.
"너 페미니스트니?"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구나... 인간 사고의 프로세스란 참... 얄궂다. 규정짓고 판단하고 분류하는 것을 좋아한다. 병적으로 집착하지.)))))
내가 페미니스트이고 아니고가 그렇게 중요한가? 나는 그냥 화장하기가 귀찮고 렌즈끼면 눈이 아픈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가는 인간, 직장인일뿐인데...
돌이켜보면 나는 여태까지 화장이나 렌즈를 착용하도록 강요받은 적이 한번도 없다. 딸 셋인 집안의 큰딸,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에 30대를 보낸 어머니와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단 한번도 여자라면 화장을 하고 항상 자신을 꾸며야한다 혹은 여자가 안경을 끼면 매력적이지 않다 따위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어린 시절 여성성을 강요받지 않았다는 것, 관련한 트라우마가 없다는 것은 어쩌면 복받은 일이다. 빅 땡스 투 파더 마더 젠틀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