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날의 오후

by 서단

때는-정확하게 말하면 좀 그러니까-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어느 날. 사건(?)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객사 미팅을 위해 탑승했던 택시 안에서 벌어졌다.


어쩜 이상한 오후였다. 갑자기 컴퓨터가 버벅거리며 튕기질 않나, 미팅 자리에 보고서를 가져가야 하는데 그날따라 프린터기가 고장이라 한참을 씨름해야 했다. 점심은 당연히 먹지 못했다. 뭔가 자꾸 꼬이고, 또 꼬이고.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와중에 다행인 게 인턴 친구와 동료들의 도움으로 겨우 출발 전 준비를 마쳤더랬다.


그러니까, 뭐. 굳이 말하자면 미팅의 출발은 산뜻했다.



여름이라 너무 더웠는데, 마침 택시 기사님이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주셔서 쾌적한 차 안이었고, 창 밖으로 푸른 잎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가로수를 보는 것도 좋았다. 바쁜 도심 속에서 서류를 뒤적거리며 이동하는 내 모습도 멋있었다. 멋진 커리어우먼이 된 듯했다.


그냥 그렇게만 기억이 되었다면 좋았으련만. 아니지, 그랬으면 이 글을 쓸 수 없었겠지. 아무튼, 차로 이동 하는 중 뒷자리에 앉아있는 팀장님과 차장님의 대화가 시작됐다.


"김 차장, A 씨 얘기 들었어?"


A 씨라면 우리 팀에 있는 사원이다. 무슨 얘기지? 귀가 쫑긋했다. 너무 궁금하지만, 먼저 아는 척해버리면 오히려 나를 신경 쓰느라 말이 끊길까 봐 숨을 죽였다. 원래 중요한 토픽들은 당사자가 없을 때 나오는 법이니까. 후훗. 뭘까.


"아니요. 왜요?"


서류를 보며 관심 없다는 듯 차장님이 으레 대답을 하니 팀장님이 잽싸게 다음 말을 이어갔다.


"A 씨 부모님... 이혼하셨대"


무슨 대단한 이야기인가 했더니만. 남의 집 부모님 이혼하신 얘기가 저렇게 격양된 목소리로 던질 일이람. 이미 10년도 훨씬 전에 부모님의 이혼을 겪은 나로서는 너무나 시시한 이야기였다. 심지어 이미 알고 있던. 에이, 뭐야. 김이 쭉 빠졌다. 재미없어.


"어머, 진짜요? 에유..."


차장님이 읽던 서류를 무릎 위에 탁 내려놓더니 팀장님의 말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언제 그랬대요?"

"몰라, 꽤 된 것 같던데?"

"나는 몰랐네..."


그냥 일상적인 대화였다. 물론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아무리 내가 친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당사자 없는데서 저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하고. 하지만 이내 나 역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A 씨 힘들었겠다"


차장님이었다. 평소에도 사소한 것들마저 공감을 잘해주시던 분이라 A 씨를 먼저 걱정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한 말은 아니지만, 잠시나마 위로가 돼.... 는. 몰라. 그러지 않았을까. 네, 맞아요. 힘들었죠. 그 순간에는. 혼자 앞자리에 앉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갑자기 우리 팀에 왜 이렇게 불쌍한 애들이 많이 들어오냐?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든 팀장님의 한마디. 순간 잘못 들었나? 생각했다. 불쌍한 애들이라니. 뭐가 불쌍하다는 거지. 불과 얼마 전에 개인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의 이혼을 오픈한 나였다. 그리고 오늘 툭 던진 A 씨 부모님의 이혼 소식. 불쌍하다는 워딩은 내가 잘못 이해한 게 아니라면 나와 A 씨를 싸잡은 말이었다.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느껴졌다. 에이. 잘못들은 거겠지?


"선마씨도 힘들었어?"


확인사살.

맞았다. 이혼한 부모의 가정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불쌍.


"그렇죠, 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덧붙이질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거기에 대고 "저 안 불쌍해요" 할 수도 없었고,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하며 따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강변북로 한복판에서 내린다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 시절 쪼랩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네, 아니오 뿐이었다.


'불쌍'의 사전적 의미는 처지가 안되고 애처롭다는 뜻이다. 처지는 놓여있는 상황이나 형편을 말하는 거고. 그래. 사전적으로는 맞는 말일 수 있지.


아니. 맞긴, 뭐가 맞아. 뭐가 안되고 애처롭다는 거야. 그걸 왜 내가, 그리고 A 씨가 남의 입을 통해서 동정을 받아야 하는 건데. 그것도 이렇게 면전에 대고. 아, 정확하게는 뒤통수에 대고.


솔직한 당시의 심정을 텍스트로 옮겨보자면, 정말 화가 많이 났다. 한 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저는 그렇게 말하는 팀장님이 더 불쌍한데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학생은 이 수업을 왜 신청했어요?


대학교 시절, 나는 전공도 아닌데 굳이 사회복지학과 '가족상담' 수업을 신청한 적이 있다. 내게는 무려 3학점짜리 교양 수업이었다. 교수님도 의아하셨는지 첫 수업 때 먼저 물으셨다.


"그냥... 궁금해서요"

"뭐가 궁금했을까?"

"음.... 우리 가족은 왜 그럴까?"


교수님과 학생들이 웃었다.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그게 진짠데.


나는 우리 가족이, 내가 속한 가정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부모님이 왜 그런 선택을 하셔야 했는지 알고 싶었다. 당시에는 전문가를 찾아 상담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기에 대학생인 나로서는 수업을 통해 갈증을 해소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서인지 전공 수업보다 더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비록 학점은 C+을 받았지만...)


뭐, 당연히 답은 찾지 못했지만 나름의 수확은 있었다. '원인은 있다는 것'


뻔한 말일 수 있는데, 당시 수업에서 들었던 내용은 이러했다. 원인은 한순간에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어 오는데 이후 결론에 도달하기 전까지 수많은 과정이 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 상담을 받으며 숱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보통은 상담과 노력을 등한시한다는 것. 가족구성원 모두가 변화를 해야 하는데, 대부분 외면해 버린다고 했다. 그러니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가족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이혼 가정이 증가하는 추세라 가족상담의 영역도 넓어져야 한다는 게 수업의 요지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 세세한 내용까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수업을 듣고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나,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우리 가족이 안쓰럽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원치 않았던 상황을 맞이한, 가해자는 없는데 피해자만 있는. 그러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불쌍하다는 말이, 내겐 너무나 가볍고 하찮게 여겨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랬다.


그날 저녁 엄마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했다. 그게 내가 우리 가족을 위로하는 방법이었고, 결코 불쌍하지 않다는 증명이었다. 물론, 그 말을 꺼낸 사람은 이런 마음을 알지도 못하겠지만.


시간이 한참이 지났는데 아직도 세세한 기억과 감정을 마음 깊숙한 곳에 저장해 두는 것 자체가 '너의 자격지심이야'라고 일갈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근데 있잖아. 그건 네가 안 당해봐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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