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난 또래에 비해 성장이 빨랐다. 친구들 평균 키가 150cm 언저리에 겨우 닿을 때 이미 160cm를 훌쩍 넘겼다. 학급에서는 당연히 큰 편이었고, 키 순서로 서면 뒤에서 1-2번째를 차지했다.
자연스레 발육도 남달랐다. 나에겐 콤플렉스였고, 초등학생 남자들에게는 놀리기 딱 좋은 대상이었다. 늘 티셔츠에 비치거나 배겨 보이는 나의 속옷은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딱 좋았다. 쉬는 시간이 되면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뒤에서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기거나, 신체 부위를 만지고 도망갔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남학생들이 어김없이 장난을 걸어오는데 담임 선생님을 마주치게 됐다. 선생님께서는 상황을 바로 간파하셨는지 내게 심부름을 시키며 다른 반으로 보내셨다. 뒤로 "너희들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이 들려왔다. 안도했다. 이제 다시는 그런 장난을 치지 않겠구나. 선생님, 감사합니다.
며칠이 지났을까. 자리 이동이 있었다. 키가 컸던 나는 당연히 분단에서 가장 뒷자리에 앉게 됐다. 늘 그랬기에 대수롭지 않았다. 다만,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에는 짝꿍 없이 1명씩 앉는, 대학교 강의실처럼 양 옆의 간격을 살짝 띄어 앉는 식이었다.
하필 내가 앉은 분단만 유일하게 7명이 아니라 8명의 줄이었다. 결국 내 옆으로는 텅 비고 나만 맨 뒤에 앉은 형태가 돼버린 것이다. 이게 지금은 그냥 그런가 보다 했겠지만, 어린 초등학생의 마음에는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자리가 그렇게 배정된 것을 어쩌겠어.
나의 고통은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국어 수업이 시작되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책을 읽게 하시고는 교과서를 들고 교실을 돌아다니셨다. 당연히 내 옆으로, 내 뒤로도 지나가셨다. 나는 학교 다니면서 늘 선생님들의 눈에 착하고 성실한 아이로 눈에 띄고 싶어 해서 선생님이 움직이실 땐 더 올곧은 자세로 앉았다. 선생님도 그런 내가 예뻐 보이셨는지 가끔 머리도 쓰다듬어 주시고, 어깨도 툭툭 치셨다. 그럴 때면 '내가 잘하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간혹 등도 쓰다듬어 주실 때도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번은 불쑥 귀에 대고 속삭이신 적이 있다. 내 브래지어를 만지면서. 무슨 말을 했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귀에 선생님의 숨소리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무 말 못 하고 굳어있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웃으면서 다시 슬슬 내게서 멀어졌다.
어린 나이에, 그리고 당시에는 성희롱이나 성추행 같은 단어들이 조심스러웠던 시절이었기에 무슨 상황인지 인지를 못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했던 건 무서웠다는 것이다.
이후 선생님은 더 과감해졌다. 귓불을 만지고, 팔뚝을 조물거렸다.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는 날도 있었다. 반팔 티셔츠를 입고 오면 겨드랑이에도 손을 넣었다. 머리를 묶고 오는 날에는 목 뒷덜미를 계속 만져댔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손을 쑤욱 티셔츠 속으로 넣어서 내 브래지어를 만지고 등을 더듬었다. 이 모든 것은 수업 시간에 벌어졌다.
내 양 옆으로는 어떤 아이들도 없었고, 모두가 앞을 보고 있었다. 나만 맨 뒷자리에 혼자. 아무런 말을 뱉을 수도 없었다. 수업 시간이었으니까. 선생님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 공포스러웠으니까. 엄마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런 걸 교육받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 마세요"
그렇게 몇 주를 견뎌내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앞을 보던 아이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 나를 쳐다봤다. 선생님은 이미 나에게서 한 걸음 떨어진 뒤였다. 아, 이렇게 하니 선생님이 내게서 멀어지는구나. 그때부터 선생님의 손이 내 몸에 다가오면 나는 또 소리를 질렀다. "싫어요" "하지 마세요" 그러자 선생님의 터치는 줄었다.
친구들이 물었다. 왜 그렇게 수업시간에 소리를 지르냐고. 나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자꾸 나를 만져. 그 얘기를 듣던 친구들이 "선생님이 너를 예뻐해서 그러시는 건데 오버 좀 하지 말라고" 그랬다. 그렇게 나는 반에서 유난스러운 애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왕따 아닌 왕따를 당했다.
한 번은 갑자기 수업 시간에 필통을 떨어트려서 앞 친구에게 '볼펜 좀 주워줘'라는 말을 하다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교실 앞에 끌려나간 적이 있다. 내가 소리를 질러대고, 선생님이 내 주위를 오지 않은지 한참이 지난 뒤의 날이었다. "왜 이렇게 시끄럽게 하냐?"라는 물음에 "펜이 떨어져서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었던 것도 한 몫했지만, 선생님과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내게 칠판을 잡고 엎드리라는 시늉을 하시며 교실에 두었던 나무 하키채를 꺼내드셨다. 나무 하키채의 모양과 길이, 색깔까지 생생하다. 5학년 6반. 그 교실은 더 이상 내게 추억도, 그리움도 아니었다.
성인이 된 어느 날 선생님의 이름을 검색해 봤다. 아, 00 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를 하셨구나. 제자들이 모여서 선생님의 은퇴를 축하하는 파티도 해주었구나. 이미 교단을 떠난 지 오래인 그 사람. 만약 내가 검색을 했던 순간에 선생님이 여전히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다면, 난 찾아갔을 거다. 그리고는 물었을 거다. 그때 왜 그랬냐고. 늙고, 힘이 빠져버린 선생님의 면전에라도 사과를 받으려 했을 거다.
그래, 너무 어렸고, 내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도 있지. 개뿔. 그러기엔 아직도 생생한 그날의 느낌들. 당한 사람만 영원히 안고 가야 하는 불편한 진실. 쉽게 꺼낼 수도 없는 더러운 순간들은 영원히 내게만 남은 이야기가 되겠지.
그래. 어차피 용서는 없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선생님이 내게 했던 딱 그만큼의 벌은 받으면 좋겠다. 그 선생님의 삶에서, 한 번쯤이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내었던 순간만큼의 고통과 후회가 있길. 그리고 자신이 저질렀던 일들에 대한 반성의 순간이 오길.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