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팀장의 대나무숲
- 사원 : 사사로운 것까지 한다.
- 대리 : 대신 일한다.
- 과장 : 과하게 일한다/ 사실상 팀에서 제일 바쁨
- 차장 : 차차 일한다
- 부장 : 부산스럽게 일한다
- 팀장 : 틈틈이.... 일한다
사원 나부랭이 시절,
이걸 만들어 놓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점심 먹으면서 동료들에게 브리핑하고 깔깔거리며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 시절 내 눈에 보이는 팀장님은 늘 바빴다.
다만, 바쁜 포인트가 조금 달랐다.
일하느라 정신없는 우리와는 달리 수다 떠느라 바빴다.
회의를 핑계 삼아 긴 시간 사담을 즐겼고,
점심 미팅을 한다고 나갔다가 돌아오면
양손을 가득 채운 쇼핑 물품을 자랑하기 바빴다.
그때 생각했다.
'아... 팀장이 되면 저렇게 되는 건가?'
거기다 '이런 건 좀 XX대리가 알아서 하면 안 돼?'라는 말을 들을 때면
팀장이라는 직책에 대한 존재 가치를 다시금 생각했다.
아마 그때 다짐을 한 것 같다.
내가 팀장이 되면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적어도 '답을 주는 팀장'이 되어야지.
그래서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다.
직접 해보지 못한 프로젝트는 담당자를 붙잡고 귀찮을 정도로 물어봤다.
문서를 만들 때에는 예전 자료를 참고하기는 하지만
결코 '복붙'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언젠가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맞춤 솔루션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를 해보고 실패도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지금은 팀장이 된 지 1년이 됐다.
이쯤되면 궁금할 수 있다.
"그럼 그토록 네가 원하던 모습의 팀장이 되었니?"
단호하게 NO다.
생각보다 훨씬 어리석고,
생각보다 훨씬 겁이 많아진 팀장이 되었다.
회의 들어가기 전에는 길고 짧게 심호흡을 한다.
들이쉬고, 내쉬고.
부디 오늘 내가 회의실에서 개소리를 지껄이지 않게 해 주소서.
회사의 대표로서 미팅에 참석할 때에는 생각한다.
부디 내 모자람이 저들에게 털끝하나 알려지지 않게 해 주소서.
집에 와서 이 일기를 끄적이는 순간에는 진심을 다해 빌어본다.
이런 개 같은 팀장의 매일이 반복됨으로 인해
내 평안함이 흔들리지 않게 해 주소서.
얼마 전, 예전에 함께 일했던 팀장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분께 물었다.
"대체 왜.... 시키면 바로 안 하는 걸까요?"
"어르고 달래고, 뭐라고도 해보고, 데드라인도 빡세게 줘봤는데 안 돼요, 안돼'
나도 안다. 나도 하기 싫을 때 미루고 또 미루니까.
그래도 해야 할 일 이 있으면 마지노선은 넘기지 않으려 애쓴다.
그게 내가 월급을 받는 이유라고 생각하고,
적어도 우리 팀 사람들은 (아주 적나라하지만) '밥 값하는 사람들'로 평가받길 바란다.
누군가는 이걸 '노예 마인드'라고 부를지 모르겠다.
근데 어차피 될 노예라면 잔소리 들으며 매질당하는 것보단 주도적인 노예가 낫잖아.
그러자 나에게 "너 아직 에너지가 넘치는구나"하며 웃으셨다.
그러고서는 시니컬한 말투로
"네 마음대로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냥 받아들여"라고 말씀하셨다.
하아.
앞으로 직장 다니면서 더 이상의 챌린지는 없을 것이라 장담했는데
새로운 미션이 떨어진 느낌이다.
하. 팀장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