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를 시작했다. 아직 초심이라 완전하게 108배를 한다고 말 못 하겠지만, 서서히 익숙해지려고 명상 음악을 틀어 놓은 후 10-15분가량 기도를 올린다. 굳이 숫자를 세지 않는 이유는 적응하기 위함이자, 행위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108배는 불교에서 하는 절의 방식 중 하나이다. 기독교로 따지면 아침예배, 참회기도쯤 되려나. 아무튼 108 번뇌를 끊어내고 정신수양과 성장에 목표를 두어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 108 번뇌는 무엇이냐. 해석하는 방법은 의견이 분분하지만, 번뇌(마음의 평온함을 얻지 못한 정신적인 모순)에 108종이 있다는 뜻으로, 사실상 모든 번뇌를 의미한다고 한다.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며 가며 절에 들르는 것을 좋아한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눈에 보이면 찾아가게 된다. 불교적인 의식은 몰라도 돌 위에 걸터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그 자체로 힐링이다. 이것이 종교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절에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게 확실히 있다. 뭐, 그렇다고 '저 이제 종교를 결정했어요'의 의미로 108배를 하는 것은 아니고.
108배를 시작한 이유는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명상의 목적이 크다. 하는 방법은 너무나 어설프지만 아침에 일어나 고요함 속에서 기도를 시작하면 처음엔 몸에 집중하다가 시간이 지나 조금씩 머릿속을 들여다보게 된다. 산만하고 사방팔방에 관심이 많은 나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처음에는 5번 정도 절을 올린 후 '하지 말까?' '괜히 시작했나?' 하는 생각이 컸다. 이 행위가 쓸데없다고 느껴졌다. 왜 해야 하는지, 내가 이런 짓까지 해야 하는지 오만가지 문장과 단어들이 내면에 쌓여갔다. 그렇게 5분가량 지나자 갑자기 절을 올리는 나의 간절함이 떠올랐다. 순간 울컥했다. 그때부터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고 집중이 됐다. 그렇게 10분가량 열심히 기도를 했다. 묘했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몸에서 그 느낌을 기억하는지 아침이 되면 자연스레 방석을 펼친다. '습관'을 입에 올리기에는 아직 한 없이 어설픈 시작이지만, 그래도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찾아냈다는 것에 위로가 되고, 평화로움이 젖어든다.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
분명 어딘가에는 나를 위하고 또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가 있을 텐데, 그동안 애써 외면하려고만 한 건 아니었나. 왜 모른 채 살려했을까. 지금 내가 좋다고 느낀 108배 말고 또 놓치고 있는 건 없나.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사실 나의 없애고 싶은 습관 중 하나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이야기해도, 처음 경험을 해야 하는 것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다. 특히 여행과 음식이 그렇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거나 배우는 것에는 엄청 열려 있는 것은 물론 설레기까지 하는데, 반대로 국내든 해외든 집을 떠나는 것에는 두려움이 앞서고 처음 접하는 음식을 입에 넣기까지 어려움이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종교 역시 내게는 그런 존재 중 하나이다. 두렵고, 어렵다.
근데 이번에 108배를 하면서 생각했다. 남들이 좋다는 데에는 이유가 있고, 내가 경험을 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구나. 고작 108배 몇 번 했다고 뭐 그렇게까지? 할 수도 있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이러한 깨달음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발전 아닌가. 아직은 관성처럼 또 부정적인 감정을 먼저 마주할 테지만, 적어도 지금 내 마음은 앞으로는 과감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몇 번 하지도 않았는데, 나 벌써 이만큼 건강해진 건가. 나의 108 번뇌들이 정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좋아, 계속해볼 수 있겠어. 그러니까 이 글 역시 앞으로의 다짐을 위한 기록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