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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썬맨 Jul 15. 2019

한국에 취직해서 부모님을 꼭 초대하고 싶어요.

친절함 넘치는 동양어 전문 통역사가 꿈인 러시아 청년 유진의 이야기.

"혹시 한국사람이에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금발머리에 푸른 눈을 한 청년이 서 있었다. 분명히 들린 건 한국말인데 한국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 친구가 말한 걸까?


"혹시 방금 저희 부르셨나요?"

"오! 한국사람 맞군요. 반가워요!"


전날 우리의 카우치 호스트 일마는 회사로 출근했고 우리는 시내를 둘러보기 우해서 나왔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동부의 수도로 불리는 도시지만 관광객이 그렇게 많은 도시는 아닌 것 같았다. 2015년부터 한국과의 무비자 협정 체결로 비자없이 러시아를 방문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고 관련 여행상품이 많지 않아서 한국인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 상항에서 기대도 하지 않은 한국말 인사라니 무지하게 반가웠다. 


그의 이름은 유진 소코브.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는 교환학생으로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며 방학을 맞아 잠시 러시아로 돌아온 상태라고 했다. 러시아에서는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 출발한 지 하루 만에 언어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때, 유진의 한국말은 마치 피자에 고추장을 한 숟가락 얹어주는 것 같은 칼칼함과 시원함이 느껴졌다. 


아내는 유진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저희는 사람들의 꿈을 상담하고 응원하는 여행을 하고 있어요. 유진씨의 꿈 이야기를 저희에게 들려줄 수 있나요?"

"네. 저는 좋죠."


우리는 젊음의 거리로 불리는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첫 번째 꿈프로젝트 시작이다. 평소에는 클라크라는 이름으로 평범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순식간에 슈퍼맨으로 변하듯이 아내의 눈빛이 상담가 모드로 바뀌었다. 


"혹시 본인의 꿈을 구체적으로 적어보고 계획해본 적 있어요?"

"아뇨. 생각은 많지만 체계적으로 적어본 적은 없어요."


"자, 그럼 오늘 처음으로 적어보는 거예요. 우리가 준비한 프로그램이 있어요. 여기에 Be, Do, Have, Share라고 항목이 나누어져 있죠? 항목에 맞춰서 유진의 꿈들을 적어보면 좋겠어요. Be는 되고 싶은 꿈들. 예를 들면 어떤 직업이 될 수도 있겠고, 어떤 사람이 될 수도 있겠죠. 저 같은 경우는 신사임당처럼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어요. Do는 하고 싶은걸 적으면 돼요. 어떤 도전도 좋고, 배우고 싶은걸 적어도 좋아요. 무엇이든 말이죠. Have는 갖고 싶은 거예요. 어떤 물건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이 될 수도 있어요. 저의 경우는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100명의 친구가 갖고 싶다고 적었어요. Share는 나누는 꿈이에요. 유진 씨의 삶이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을 따뜻하게 비추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삶이면 더 좋지 않을까요? 본인이 나눌 수 있는, 또는 앞으로 나누고 싶은 꿈을 적어주세요."


동양어 전문 통역사가 되고 싶은 유진. 하나씩 적어 내려 가는 리스트에는 그가 통역사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가 있었다. 


러시아 청년 유진의 꿈


"저는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통역해주는 전문 통역사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이후에는 일본어도 배워서 실력을 더 갖춘 동양어 전문 통역사로 발전하고 싶어요. 저희 부모님은 우수리스크라는 곳에 살고 계신데, 제가 한국어 통역사가 되는걸 기쁘게 생각하고 응원해주세요. 나중에 제가 한국에서 일하게 돼서 비자가 생기면 부모님을 초대해서 여행도 할 수 있겠다고 말씀해주시곤 하죠. 그래서 꼭 한국 비즈니스 비자를 갖고 싶어요. 저는 자신감이 부족한 편이어서 말을 잘하는 훈련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친절한 통역사가 되고 싶어요."


"유진은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꿈으로 가지고 있지만, 그 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가득한 착한 청년이군요. 지금 현재의 상황은 어때요?"


"지금은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죠. 한국인 여자 친구도 있어요. 우선 공부를 부담 없이 이어갈 수 있게 장학금을 타고 싶어요. 그리고 한국 언어와 관련된 일을 시작하고 싶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외국인이 취직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공급과 수요가 균현이 맞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싶은 꿈은 존재하지만 현실의 무게 앞에서 한숨을 내쉬는 유진. 자신감이 부족한 성격이라서 미래에 대한 고민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우리 약속해요 유진. 어려운 상황이 와도 포기하지 말기로. 지금은 유진이 통역사라는 특정 직업을 생각하고 있지만, 한국어를 배운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게 반드시 통역사라는 직업에 한정되기보다는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도 지금의 공부와 마음을 연결할 유진만의 방법이 생길 거라 믿어요."


꿈 인터뷰를 하면서도 주변 테이블을 의식하는 유진. 그에겐 스스로의 한계를 깨는 자신감이 필요해 보였다. 


아내는 캘리그라피와 함께 응원카드를 적어주었다.



"밖으로 나와요 유진. 우리 한번 달려봅시다."

"네?"


아내는 즉석 제안을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자신 있게 한국 사람이냐며 말을 건넨 모습과 달리, 구체적인 꿈 인터뷰를 할수록 주눅 든 유진의 모습 때문이었다. 


"자 지금부터 동영상을 찍을 건데, 여기 셀카봉에 달린 카메라를 바라보고 달려갈거에요 주변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보겠죠? 하지만 우리의 만남을 특별하게 간직한다 생각하고 주변 신경 쓰지 말고 신나게 한번 달려봅시다. 알겠죠?"

"하지만 저는... 부끄러워요."

"유진, 하기 전에도 부끄럽고 하고 나서도 부끄럽다면 하고 나서 부끄러운 게 낫지 않을까요?"

"음... 좋아요. 한번 달려봐요."

"자! 하나! 둘! 셋! 고!!!"

유진과 블라디보스토크 아르바트 거리를 달리다.


셀카봉을 길게 늘어뜨린 우리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신나게 달렸다. 유진은 처음엔 부끄러워하는 듯했으나 이내 웃음을 지으며 힘껏 달렸다. 


"부끄러워요?" 아내가 물었다.

"뭔가 부끄럽긴 한데 기분은 좋아요."


어느새 자신감 없는 모습은 사라지고 처음 우리를 만났을 때의 밝은 청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유진. 현실의 어려움이 때때로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주눅 들게 만들 수 있지만 오늘의 달리기처럼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는 용기가 그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머지않은 날, 통역사가 되어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그의 늠름한 모습을 상상해본다. 


'힘내요. 유진.'


러시아에서 만난 유진의 꿈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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