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약속도 없는 평일이었다.
일정표를 채울 일도, 서둘러야 할 이유도 없는 날.
예전의 나라면 이런 하루를 조금 불안해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다는 기분 때문이었다.
요즘의 나는 그런 날에 일부러 손을 움직인다.
꽃을 정리하거나, 작은 재료를 꺼내 무언가를 만들거나,
사진을 한 장 꺼내 천천히 바라본다.
특별한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그저 지금 손에 닿아 있는 감각에 집중한다.
사부작거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하루를 단단하게 만든다.
시간을 ‘채운다’는 느낌보다
하루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는 감각에 가깝다.
이 시간이 없었다면
아무 일도 없는 하루는 그저 비어 있는 하루로 남았을 것이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동안
나는 조급해지지 않는다.
다음 계획을 앞당겨 생각하지도 않고,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도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이 동작 하나면 충분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하루를 보내고 나면
하루를 잘 살았다는 기준이 조금 달라진다.
많이 해냈는지보다
나에게 맞는 속도로 지냈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사부작거리는 시간은
내 하루에 그 기준을 만들어준다.
아마도 나는 이런 날들을 자주 쓰게 될 것 같다.
아무 약속도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나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하루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