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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킹시이사 아줌마

담배집 불량식품

by 카미유

초등학교 때 집 앞 골목에 담배집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었다. 일종의 구멍가게인데 제대로 된 상호 없이 담배라고 써 붙인 직사각형 녹슨 철제간판만 입구에 붙어있었다. 그렇다고 담배만 파는 곳은 아니었다. 다른 동네 슈퍼처럼 자잘한 먹거리와 생활용품도 있었는데 가지 수가 많지 않을 뿐이었다. 가게 주인은 50세 전후로 추측되는 중년의 아줌마였는데 평소엔 가게 안쪽 방에 누워 있다가 손님의 인기척이 들리면 주섬주섬 나와 얼굴을 드러냈다. 처음 그녀와 맞닥뜨리는 순간 나는 괴수 대백과 사전에 나오는 킹시이사가 떠올랐다. 머리를 산발로 늘어뜨리고 이빨이 몇 개 빠진 사나운 개처럼 생긴 그녀의 얼굴은 괴수 킹시이사와 유사했다.


지금으로선 떠올리기 힘든 풍경이지만 나는 담배를 사기 위해 담배집에 종종 들렀다. 집안에 흡연자가 셋(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 이나 있어 담배가 떨어지는 일은 자주 발생했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비흡연자임에도 꾸불꾸불한 담배 연기와 냄새는 익숙했다. 이들은 만 10살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켰다. 가끔 한 보루 값을 주기도 했지만 보통은 한 갑 단위로 샀다. 세 사람은 담배 취향이 제각각이었다. 아버지는 거북선, 할머니는 SUN, 할아버지는 솔이었는데 나는 냄새만으로 이들을 구별할 수 있었다. 특히 담배를 쌀과 밀가루 같은 일용할 양식으로 취급하는 할머니는 언제 안면을 텄는지 담배집 아줌마와 가게에서 수다 떠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담배집에서 킹시이사 아줌마와 대면하는 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다른 가게는 큰길을 지나 제법 걸어가야 했고 무엇보다 떡고물의 유혹이 달콤했다. 심부름에 대한 수고비로 가끔 100원짜리 동전을 받곤 했는데 이 돈으로 과자를 사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담배집에도 좋아하는 과자들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담배집에서 담배만 살뿐 과자는 일절 사지 않았다. 큰길 너머 슈퍼가 물품이 더 많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담배집 특유의 음침함과 비위생적 환경 때문이었다. 그곳은 대낮에도 내부가 어두컴컴했고 물건 곳곳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이 점은 킹시이사를 닮은 아줌마의 비호감 외모와 결합 되어 구매 욕구를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어느날 길 건너 슈퍼에서 맛동산을 사서 돌아가던 중 담배집 아줌마가 불쑥 밖으로 튀어나왔다. 집에 가려면 담배집 앞을 무조건 지나가야 했는데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던 아줌마였기에 절로 걸음을 멈추었다.

- 니 앞집 할매 손자 맞재? 일로 와봐라.

그녀는 가게 앞에서 나를 향해 손짓했다. 순간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못 들은 척 집으로 뛰어 들어갈까. 하지만 들었다는 걸 알 텐데 그러기엔 이미 늦었다. 무엇보다 손에 들고 있는 맛동산이 문제였다. 왠지 다른 가게에서 샀다는 걸 알면 혼이 날 것 같았다. 난 뭔가를 훔치다 들킨 초짜 도둑마냥 과자를 뒤로 숨기고 고개를 숙인 채 가게로 들어갔다. 일부러 찾아내지 않아도 똑같은 맛동산이 매대 앞에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맛동산에 일절 관심이 없었다. 가게의 과자들을 몇 번 뒤적거리더니 노랑과 주황 띠가 반반 섞인 쫀드기 봉지를 내밀었다.

- 이거 묵거라.

나는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정말 돈을 안 내도 되는지 등 잡생각이 밀려와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 얼른 받거라! 팔 떨어진다.

어쩔 수 없이 쫀드기를 받아서 집으로 왔다. 근데 이거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했던 불량식품이잖아. 쫀드기 꾀돌이 아폴로처럼 유명한 회사에서 나오지 않은 먹거리들은 불량식품으로 지정되었다. 불량식품을 먹지 맙시다 는 간첩이 보이면 신고합시다 처럼 80년대 어린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계율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애들이 불량식품을 먹지 않은 건 아니었고 범생이 1등급인 나도 맛을 보기는 했다. 하지만 직접 사 먹은 적은 없었고 애들이 주는 걸 한 조각씩 받아먹은 게 전부였다. 그렇다고 이걸 버릴 순 없고 먹자니 뭔가 찜찜하던 차에 형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가방을 내려놓고 쫀드기의 먼지를 탈탈 털어낸 형은 물었다.

- 담배집에서 니한테 줬다고? 왜?

- 나도 모르겠다. 아줌마가 묵으라고 주드라.

- 애들은 이런 거 먹으면 배탈 나. 이리 줘봐.

형은 자기도 초등학생이면서 어른이라도 되는 것처럼 충고했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가더니 연탄불 앞에서 쫀드기를 구웠다. 나한테는 먹어보라는 말도 안 꺼내고 혼자 열심히 뜯어먹다 막판에 선심이라도 쓰듯 한 조각을 때서 내주었다. 형은 늘 이런 식으로 나를 골탕 먹였다. 연탄불에 살짝 구운 쫀드기의 맛은 맛동산 따위가 우스울 정도였다.


이후 담배집에서 불량식품을 대놓고 사먹기 시작했다. 쫀드기는 말할 것도 없고 아폴로의 비닐을 쪽쪽 빨아먹고 어금니가 아플 정도로 꾀돌이를 부셔먹었다. 대체 누가 불량식품을 먹지 말라 했던가. 정작 불량식품을 먹고 배탈이 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불량식품은 전혀 불량하지 않았다. 나는 담배집의 충실한 불량식품 고객이 되었다. 더는 킹시이사 아줌마를 무서워하지 않고 갈 때마다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 인사의 대가는 아줌마의 추가 서비스로 돌아오기도 했다.


어쩌면 담배집 아줌마의 노련한 영업전략에 넘어간 걸지도 모르지만 그때 맛동산을 눈감아주고 쫀드기를 건네준 아줌마에게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어릴 적 괴수 대백과 사전에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다. 킹시이사는 훙폭한 외모와 달리 고질라와 함께 악당 메카고질라와 싸운 오키나와의 수호신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담배집 아줌마에게 킹시이사라는 별명은 제법 어울려 보인다. 자고로 건강한 건 맛이 없고 해로운 게 맛있다는 건 진리에 가깝다. 나이를 채워갈수록 건강을 위해 이로운 식단을 지향하지만 사람이 깨끗한 것만 먹고 살 순 없는 법. 불량식품을 그렇게 먹어도 아무튼 건강하게 반백살을 살아내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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