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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Aug 24. 2023

프롤로그 : 나의 직업 도전기를 시작하며

‘천하장사 마돈나’라는 영화를 봤다면 주인공 못지않게 인상적인 캐릭터 한 명을 기억해낼 것이다. 주인공 동구의 친구로 장래 희망이 수시로 교체되는 독특한 캐릭터 종만이. 종만이는 꿈이라는 걸 마음대로 떠들고 다녀도 용인될 10대였다. 하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 모름지기 사람 구실을 해야 할 2,30대에도 그러고 다닌다면 어떨까. 나는 불행히도 젊음의 정점이라 일컬어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소위 ‘백수’로 지냈다. 직업이 없으니 돈이 모이지 않고 돈이 없으니 삶은 궁색해졌다. 그래도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 자기합리와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근자감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뭔가 폼 나는 직업을 가져보고 싶었지만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꿈의 결과물은 정해져 있었다. 결과적으로 단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고 연속된 실패와 좌절만 끌어안은 채 소중한 젊음을 날렸다.


누군가는 실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실패의 경험들은 성공으로 가는 귀중한 자산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실패를 겪더라도 시도해 보는 게 낫다고. 일견 맞는 말이다. 성공한 사람들도 크고 작은 실패의 과정은 피할 수 없기 마련이다. 그래도 단언컨대 실패는 안할 수 있다면 안 하는 게 좋다. 실패를 통해 배울 점이 있지만 작더라도 성공을 통해 배우는 편이 더 건강하고 삶이 윤택해진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차라리 나을 때도 많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뭔가를 자꾸 하려다 보면 본의 아니게 자신도 남도 고단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의 백수 시절은 확실히 그랬다. 실패의 시간이 누적되다 보니 선의의 충고도 고깝게 들렸고 가뜩이나 예민한 성격은 더 날카롭게 날을 갈았다.

     

2005년 봄, 마침내 제대로 된 취업이 확정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했다. 남들처럼 살아보고자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짠내 배인 단칸방을 탈출한 다음 핸드폰을 바꾸고 새 정장을 맞추었다. 욕구불만의 쓰레기통이 된 싸이월드와 블로그의 글들을 모조리 삭제했고 그 시절 벗이 되어주었던 컴퓨터 하드를 포맷시켰다. 길었던 백수 생활을 청산한 뒤 안정된 직장의 품에서 올해 18년째를 맞이했다. 만족스러운 일은 아니어도 충분히 견딜만했고 통장에 월급이 꼬박꼬박 박혔다. 인간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는 게 안정감이 지속될수록 되러 불안정한 지난 기억들을 떠올리는 때가 많아졌다. 그때 그 시간들은 진정 나에게 완전히 무용했던 흑역사였을까?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은 전혀 없다. 현재의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간다면 또다시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고 후회했을 게 뻔하다. 하지만 과거를 부정한다고 과거가 사라지지 않듯 그 시간도 스스로 보듬고 주름살을 펴 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의미 없는 시간이라고 느끼는 순간 그건 진짜가 아닌 가짜가 돼버리니 어떤 의미라도 찾아야 되지 않을까. 실패란 바른 길을 벗어나 어긋난 길로 들어서야만 경험할 수 있는 법이다. 보잘 것 없지만 여러 빛깔의 실패의 별사탕을 글로 써서 다른 이들의 입속에 넣어주고 싶다. 10년에 걸친 한 인간의 직업 도전 실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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