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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Aug 25. 2023

게임 개발자 (1화 오락실 키드)

 

오락실. 지금도 그 단어만 떠올리면 마음 한 컨이 아련해진다. 학창시절 어른들 말씀을 따라 오락실 출입을 하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혹자는 오락실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된다고 그런 말을 하느냐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초중고 12년 동안 오락실에 투자한 돈과 시간은 결코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매일 오락실에 출근 도장을 찍어야만 집으로 갔다. 빳빳한 지폐로 받은 용돈의 절반 이상은 동전으로 교환되어 오락실 기계 속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그 속에는 참고서와 간식비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시간을 공부에 더 투자했다면 더 나은 대학에 들어갔을지도 모르고 다른 뭔 짓을 했더라도 오락실 경험치 보다는 얻어가는 게 있지 않았을까.

     

 게임을 좋아한 게 첫 번째 불행이라면 두 번째 불행은 게임을 너무 못했다는 거다. 오락실 게임의 핵심은 순간적인 판단력과 반응속도인데 나는 모든 게 다 느려 터졌다. 친구와 같이 가면 동 시간 대비 두 배 이상의 돈을 써야만 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못했지만 특히나 비행기가 나오는 슈팅 게임과 격투 대전 게임은 걔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내 비행기는 첫 스테이지 보스 앞에서 매번 격추되며 GAME OVER 메시지를 띄웠다.


그나마 슈팅게임은 가끔 잘하는 친구에 기생하며 생명연장이 가능했지만 격투 대전 게임은 이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스트리트 파이터가 오락실을 점령했던 90년대 초반, 나는 영악한 초딩들의 맛있는 밥이었다. 류의 승룡권에 쳐 맞고 블랑카의 전기 공격에 기절하고 가일의 서머 솔트킥에 뒤졌다. 마음 같아서는 이 어린놈의 자식들 대갈빡이라도 한 대 찰지게 쥐어박고 싶었지만 실력이 없어 진 걸 누굴 탓하겠는가. 오락실 사장 입장에서는 나 같은 VIP 손님만 있다면 연중 호황을 누릴 것이다. 그야말로 가성비 최강의 호구였다.

    

 대학에 입학한 93년 그해, 우리 집은 대학생 두 명이 있다는 명목으로 용산전자상가에서 삼보 486-DX2 컴퓨터를 구매했다. 형과 나는 무조건 비싼 게 좋은 거라며 컴퓨터에 무지한 아버지를 꼬드겨 본체 가격만 200만원이 넘는 최고급 사양으로 구색을 맞췄다. 386 컴퓨터만 있어도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던 시절인데 486 이라니 기세가 오죽하겠는가. 지금의 MZ 세대들은 믿기지 않겠지만 고릿적에는 하드 디스크라는 게 없이 부팅 디스켓을 꽂아야만 작동하는 컴퓨터들이 많았다. 그 와중에 대용량 하드 디스크와 최신형 그래픽 카드를 장착하고 있는 486-DX2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공부 때문에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말을 믿는 순진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결국엔 게임이 목적이었다. 이젠 오락실에 동전을 갖다 바치는 대신 돈을 틈틈이 모아 용산에서 패키지 게임을 구매했다. 그해 가을 어느 날, 형은 출처 미상의 불법 복제 검정색 5.25인치 플로피 디스켓 두 장을 가져왔다. 상단의 라벨에는 각각 삼국지2, 대항해시대라는 휘갈겨진 글자가 볼펜으로 적혀 있었다. KOEI 게임과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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