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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Aug 28. 2023

게임 개발자 (2화 KOEI 게임과의 만남)

 대학 신입생 하면 떠오르는 게 뭐가 있을까. MT, 미팅, 동아리, 축제 등등 새내기가 캠퍼스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유희적 활동이 생각나겠지만 나에게는 오로지 게임이었다.  삼국지2, 대항해시대와 함께 그해 2학기와 겨울방학은 말끔하게 삭제되었다. 공부건 놀이건 뒷전이고 밤낮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에 매달렸다. 특히 삼국지2는 게임중독의 늪으로 가는 발화점이 되었다. 모니터의 붉은 색 KOEI 글자만 봐도 오르가즘을 느꼈다. 삼국시대 영웅호걸들을 일일이 조종해가며 중국 통일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오락실 게임에서 요구되던 감각과 순발력 대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점에서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겨울방학 때 부모님이 2박3일 여행을 가며 집을 비운 적이 있었다. 눈치 볼 사람이 사라지자 나는 쾌재를 부른 채 밥도 거른 채 잠도 자지 않고 게임만 했다. 삼 일째 되던 날 체력의 한계점에 다다랐는지 더 이상 눈꺼풀을 지탱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엎어졌다. 여행에서 돌아온 부모님은 거실에 혼수상태로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한 뒤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얼마 후 정신이 깨어나는 바람에 최악의 사태는 막았지만 이 일로 인해 집안에서 게임에 대한 제재가 들어갔다. 나는 쓰러진 와중에도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모니터에서는 유비의 3만 정예부대가 조조가 점령한 낙양을 침공 중이었고 스피커에서는 경쾌한 전투 BGM 이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2학년이 되면서 이제는 게임에서 벗어나 대학생다운 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한번 열려진 판도라의 상자를 닫는 건 불가능했다. 초창기처럼 하루 종일 게임에 매달리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게임은 일상의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해 윈도우 플랫폼의 삼국지3 가 출시되고 다음 해에는 대항해시대2 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게임 라이프는 가속페달을 밟아나갔다. 물론 그때 KOEI 게임만 했던 건 아니었지만 KOEI 의 삼국지, 대항해시대 시리즈는 대체불가 핵심 코어였다. 특히 대항해시대2 는 게임 유저들에게 불멸의 명작으로 평가받는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게임을 통해 유익한 학습효과를 얻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의지만 대항해시대만큼은 예외로 봐도 좋지 않을까. 대항해시대를 통해 세계지도를 가뿐하게 그릴 수 있었고 전 세계 바다를 항해하면서 유명한 항구 도시와 유적들의 이름을 저절로 외우게 되었다.

      

 

같은 게임을 장시간 반복해서 하다 보니 공략 법은 눈 감고도 해내는 수준이 되었다. 지금은 유튜브와 블로그에 게임공략이 친절하게 다 나와 있지만 당시만 해도 정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게임의 노하우를 혼자만 갖고 있기 아깝다 생각해 천리안, 나우누리 같은 PC통신에 적극적으로 공략집을 제작해 올렸다. 이젠 질릴 만큼 했으니 그만해야지라고 생각하던 찰나 번뜩이는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 순간 나는 플레이어의 시각에서 벗어나 개발자의 입장에서 게임을 바라보게 되었다. 각종 소소한 버그들과 수정 보완할 점이 집중적으로 눈에 띄었고 나라면 이렇게 만들었을텐데 라는 생각이 콩나무 줄기처럼 뻗어갔다. 아무리 잘 만든 게임도 결점은 존재하는 법이고 때로 숙련된 플레이어는 개발자의 두뇌를 뛰어넘게 마련이다. 마침내 나는 결심했다. 그래, 내가 직접 한번 게임을 만들어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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