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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Sep 12. 2023

게임 개발자 (4화 그 시절 나를 중독시킨 게임들)

“ 통일은 아직도 멀었냐? ”

“ 아버지 이건 삼국지5 에요. 지난번에 본 건 삼국지4 잖아요.”

한글 정발 판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나는 불법 복제판 삼국지5를 밤새도록 플레이하고 있었다. 게이머들의 적잖은 비판을 받았던 삼국지4 와 달리 명성과 진영 개념을 도입한 삼국지5 의 인기는 출시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아버지 입장에선 아들이라는 놈이 허구한 날 컴퓨터 앞에 앉아서 통일만 하고 있으니 답답해 미칠 노릇이지만 이것도 다 게임개발을 위한 공부라고 주장하니 화를 내기도 애매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심각한 게임 중독 상태에 빠져있었다. 그 시절 플레이한 게임들을 나열하자면 책 한권을 써도 모자라지만 특별히 중독지수가 심했던 게임 열 개를 선정해보았다. 앞서 언급했던 삼국지와 대항해시대는 제외시켰다.  

        

삼국지 영걸전

삼국지가 궁금한데 드라마나 책의 방대한 양이 부담된다면 이 게임을 해보는 건 어떨까.  유비가 생각보다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게 될 것이다. 약소세력으로 패배와 도주를 반복하면서도 차근차근 인재를 모으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며 삼국지의 매력을 듬뿍 맛볼 것이다. 완성도 측면에서는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모드로 제작되고 있는 조조전이 월등하지만 오리지널 스토리가 주는 투박한 감동은 결코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이다.

크론도의 배신자

9장의 디스켓으로 구성된 당시로서는 엄청난 분량의 대작. 대중적으로 큰 히트를 친 게임은 아니지만 RPG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명작이다. 무엇보다 일정한 공격을 계속 받았을 때 신체 상태가 떨어진다는 논리는 기존의 HP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신선한 요소였다. 이밖에도 캐릭터의 사소한 행동들의 디테일함은 게임의 몰입감을 극대화시켜준다. 영어를 몰라 진행에 어려움을 겪다 나중에 한글 공략집이 배포되어 엔딩을 봤는데 스토리에 다시 한 번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하드볼4

야구게임의 최고봉은 하이히트 시리즈라고 생각하지만 하드볼 시리즈는 아케이드성 요소가 배제된 거의 최초의 게임이라 의미가 있다. 실제 MLB선수들의 이름과 스탯, 구장까지 그대로 재현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물론 이름만 다르지 얼굴이나 모션은 똑같고 인공지능도 단순하지만 실제 야구에 근접한 시도를 했다. 에디터 기능이 있어 KBO 선수들로 이름과 스탯을 바꾸어 여러 시즌을 풀로 돌리면서 원 없이 즐겼다.       

NBA LIVE 95

게임 때문에 컴퓨터 사양을 바꾸는 케이스가 가끔 있는데 나에게는 NBA LIVE 95 가 그렇다. 이 게임을 하기 위해 CD-ROM을 달고 그래픽 카드와 CPU 까지 교체했는데 이 배경에는 마이클 조던의 복귀와 맞물려 NBA 에 빠져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조던, 바클리처럼 라이센스를 취득 못한 선수도 있지만 NBA 전 선수들이 실명으로 등장하고 한층 진일보한 그래픽은 눈길을 사로잡았다. 게임 성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향후 NBA LIVE 시리즈의 인기를 열어젖히는 기념비적인 시작이었다.

워크래프트2

스타크래프트를 탄생하게 만든 토양이 되었던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 시리즈. 당시 C&C 나 듄 같은 RTS 장르의 게임이 인기를 끌었지만 이런 류의 게임을 워낙 못해서 진입 장벽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워크래프트가 가지는 직관적이고 깔끔한 그래픽에 끌려 장시간을 플레이 했다. 멀티가 아닌 싱글만 했음에도 게임을 잘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흥미진진했다. 그래서일까 스타크래프트의 정글 같은 세계에는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었다.     

더 캐슬

PC 게임은 아니지만 내 게임인생에 무시할 수 없는 작품이라 언급해본다. 오래전 우리 집에는 대우 재믹스 게임기가 있었는데 MSX 의 명작이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공간에서 퍼즐을 풀며 100개의 방을 클리어 하는데 개발자가 진심 천재라 느낄 정도로 퍼즐들이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 당시 형이랑 머리를 쥐어짜내며 끊임없이 플레이했던 기억이 난다. 재믹스에는 세이브 기능이 없어 당시에는 엔딩을 못 봤지만 훗날 PC 버전이 나오면서 엔딩을 봤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프린세스 메이커2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는 말이 필요 없을 만큼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았던 명작이지만 걔중 최고는 2편이고 나 역시 2편으로 입문했다. 수십 가지 엔딩을 다 보기 위해 반복 플레이는 필수였고 은근 변태스럽고 성적인 요소도 많았다. 딸을 키우고 훈육한다는 명목으로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서 한 짓들을 나열해 보자면 죄질이 장난 아니다. 아동학대, 근친상간, 강제노역, 미성년자 성매매, 전투노예, 불법 약물 투여....헉헉      

동급생2

일본 야게임 장르도 게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 시절 나의 야게임 삼대장은 동급생2, 애자매, 노노무라 병원 사람들이었다. 이런 게임하면 자연스레 야애니가 연상되는데 그래도 이것들은 명백히 게임이다. 특히 동급생2는 야게임의 스터디셀러 답게 뛰어난 게임성이 가미된 수작이다. 일본어를 몰라 JDOS 의 엉터리 번역을 돌린 다음 15명의 여성들을 흥분 속에 공략했던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공략 난이도가 가장 높다는 나루사와 유이를 마지막으로 정복했을 때의 희열은 마치 실제 연애를 성공한 듯한 쾌감과 흡사했다.        

캡틴 코만도

오락실 게임은 앞뒤 가리지 않고 다 쥐약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선방하는 장르가 있다면 횡스크롤 액션게임이다. 일단 최대 4인까지 협력 플레이가 가능해 약점을 서로 메꿀 수 있었고 적들의 패턴분석이 용이해서 느린 순발력을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횡스크롤 액션게임의 종류도 수십 가지가 있지만 캡틴 코만도를 가장 즐겨했다. 캐릭터 디자인이 세련되고 무기종류도 다양하고 난이도도 비교적 높지 않은 편이라 그랬다. 보통은 주인공이자 제일 간지 캡틴 코만도를 선택하지만 나 같은 초보자들은 미이라 맥을 대체로 선호했다. 4인 합동 플레이였지만 원 코인 엔딩을 본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게임이었다.     

 울펜슈타인 3D

고전 FPS 게임하면 둠 시리즈가 제일 유명하지만 울펜슈타인은 둠의 원조 격으로 정의의 편에서 나치를 타도하고 최종보스인 히틀러를 잡는 게임이다. 프레임이 부드럽지 않아 플레이를 하다 보면 약간의 어지럼증과 구토증상이 유발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부정적 요인이 오히려 게임을 실감나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발생시켰다. 공격을 받을 때마다 얼굴에서 피가 나는 모습이 리얼하게 구현되는데 플레이 타임이 짧음에도 긴장감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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