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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Sep 19. 2023

게임 개발자 (5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좋다)

게임스쿨을 다니는 동안 다른 수강생들도 우리 같은 놀자 그룹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착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게임의 바다에서 유영하는 동안 일부는 진심으로 이 과정을 성실하게 이수하고 있었다. 4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실습 과제가 주어졌다. 슈팅 게임의 시조새격인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같은 유형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기본 틀만 제시하고 게임의 구성과 디자인은 각자 자유롭게 설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실습이었다. 뒤늦게 공부를 해보자 책을 펴봤지만 이해될 리 없었고 결국 다시 컴퓨터 전원의 불을 켜고 게임에 몰두했다. 한 달여의 개발기간을 거쳐 시연을 하는 날, 당연하게도 게임은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총알은 방향키와 싱크로가 맞지 않고 플레이어의 유닛은 갑자기 화면 바깥으로 사라졌다. 스코어판은 격추를 했음에도 카운팅이 되지 않았고 무한루프가 걸렸는지 스테이지마다 같은 적만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되었다. 나는 이렇게 단순한 게임조차 엉망진창 버그투성이로 만들었고 더 이상 진행불가 판정을 받았다. 여타 게임의 버그들은 귀신같이 잡아내면서 정작 내 안의 버그들은 놓치고 말았다. 제 몸에 낀 때는 못 보고 남의 허물만 꼬집는 어리석음의 결과였다.

     

반면 평소 구석에서 묵묵히 수업에만 집중하던 P의 시연 과정을 보면서 나는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 흑백 화면의 내 인베이더와 달리 256칼라 그래픽을 활용한 각양각색의 적들이 매 스테이지마다 출현했다. 플레이어의 비행 유닛도 좌우로만 움직이던 나와 달리 상하좌우를 모두 활용했고 아이템에 따른 변형과 기능 강화도 완벽히 구현해냈다. 강사와 수강생들의 박수소리가 이어졌고 나는 길을 잃은 인베이더가 된 심정이었다. 삼국지와 대항해시대를 능가하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패기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뛰려고 했으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도 있지만 여기엔 전제가 필요하다. 즐기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즐기기만 하는 자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저절로 뭔가 될 거라는 희망만큼 안일하고 위험한 생각은 없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게임만 즐기던 이들은 하나씩 자취를 감추었고 자신감과 흥미를 상실한 나는 남은 수강 시간을 건성으로 때우며 과정을 마쳤다. 그 와중에 P를 비롯한 수강생 몇은 취업 의뢰를 받거나 알바 자리를 찾아 유유히 게임스쿨을 떠났다.

     

비록 게임 이력만 쌓아놓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게임스쿨과 작별했지만 여전히 나는 게임이 좋다. 지금 내 방안에는 3대 콘솔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스위치, XBOX가 모두 설치되어 있다. 현세의 삶이 바빠 주말에만 가끔 즐기지만 관심 가는 타이틀은 플레이 여부와 상관없이 꼬박꼬박 사 모으고 있다. 일종의 구매 중독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역시나 나에게 게임 없는 삶이란 상상하기 힘들다. 게임을 사랑하긴 하지만 게임이 미치는 무익한 측면들을 변명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에 관해서는 여전히 개선을 바란다. 특히 열악한 환경 속에 피어나는 개발자들의 노력과 진심에 대해서는 부러움과 경외를 품고 있다. 우리나라는 왜 닌텐도 같은 게임을 못 만드냐고 질책만 하지 말고 현실적인 여건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실 우리나라만큼 게임을 좋아하는 국민도 흔치 않다. 투자 대비 효율이 높은 모바일 게임과 과금에만 몰두하는 개발 환경에서 젤다와 GTA 같은 위대한 게임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겠는가. 패키지 게임 매니아로서 이런 점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나는 안이함과 무책임함으로 야기된 실패를 스스로 인정하고 다음 해 4학년으로 복학을 했다. 게임개발자의 길은 포기했지만 아직 스물셋밖에 되지 않았고 다시 뭔가를 시작할 시간은 충분히 남아있었다. 고도 근시 때문에 군대를 면제받아 동기들보다 2년의 시간을 더 벌어놓기도 했고 학교를 다니면서 진로에 대해 천천히 다시 고민해보기로 했다. 정 안되면 졸업 후 적당한 회사에 취업해서 돈이나 벌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그땐 알지 못했다. 이것이 실패 교향곡의 서막에 불과했다는 것을.... 인간의 어리석음 역시 반복된다는 것을.... 그해 겨울 IMF 라는 거대한 해일이 태세를 갖춰 밀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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