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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Oct 05. 2023

애니메이터 (2화 웅크렸던 만화의 꿈)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소망은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꿈이었다. 1980년대 만화방은 오락실과 더불어 동네 꼬맹이들의 놀이터였고 나 역시 충실히 이 모든 것을 사랑했다. 방구석에 엎드려 대본소 만화의 장면들을 배껴 그리는 건 일상이었다. 이때만 해도 내가 그림을 꽤 잘 그린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교내 사생대회나 반공 포스터 그리기에서 상도 탔고 교실 뒤편 초록색 부직포에 그림이 종종 걸리기도 했다. 걔 중 가장 즐겨 그렸던 건 로봇과 괴수였다. 병치레를 자주 하는 빈약한 몸 때문인지 마음속엔 강하고 힘센 존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당시 포켓북 형식으로 나온 로봇대백과, 괴수공룡대백과 같은 책을 끼고 살면서 노트와 스케치북으로 옮겨 그렸다. 부산에 살아서 유선 채널로 일본 만화 영화를 접할 기회도 많았다. 일본말을 못 알아들어도 로봇 만화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하등 지장 없었다.

         

본격적인 만화 그리기에 시동을 걸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강냉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강형을 만나고 난 다음부터였다. 어린애들이 일차원적으로 지은 별명답게 강형이와 강냉이는 이름의 한 글자가 같다는 거 말고는 상관관계가 전혀 없었다. 강냉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얼굴이 강냉이처럼 생기지도 않았다. 그저 모두가 강냉이라 부르니 나도 강냉이로 불렀다. 강냉이는 나처럼 말이 적고 평범한 아이였지만 미술 시간만 되면 주목을 받았다.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뭐든 잘 그려냈다. 단순 모사 수준을 넘어 창조적인 힘이 느껴졌는데 남들 다 다니는 동네 미술학원 문턱조차 밟아보지 않았음에도 이미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유한 찐 재능이었다.

     

우리 둘은 같은 분단 앞뒤로 앉아있었고 딱히 친하다고 말하기엔 애매한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로봇대백과를 펼쳐놓고 로봇을 스케치하던 중 강냉이가 쳐다보는 낌새를 느꼈다. 나는 너도 한번 그려보라며 책을 내밀었고 그는 바로 공책에 쓱싹쓱싹 연필질을 해댔다. 강냉이와 내 그림의 차이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그는 책과 똑같이 그리지 않았고 로봇에 관절의 움직임을 넣어 살아 움직이는 듯 입체감과 역동성을 구현해냈다. 나는 강냉이의 그림에 홀딱 반했고 이를 매개로 우리 둘은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는 엄마 없이 아빠랑 단 둘이 지하 단칸방에 세 들어 살았는데 늦게까지 집이 비어있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레 우리들의 화실이 되었다. 

     

어두침침한 전구 불빛 아래 한 쌍의 나방처럼 우리는 서로 몸을 밀착시켜 그림을 그렸다. 스케치북 공책 달력 신문지 등 빈 공간만 보이면 연필을 쉴 새 없이 놀려댔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고 심혈을 기울인 작품은 교과서의 모퉁이에 그림을 그린 뒤 책장을 빠르게 넘겨 애니메이션 효과가 나는 플립 북이었다. 함께 로봇 괴수 만화의 스토리를 짜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해는 금방 저물고 마지막 장을 채우는 순간 위대한 업적이라도 이룬 듯 기쁨에 겨워 깔깔거렸다. 우리의 작품은 완성 즉시 반 아이들에게 선보였다.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내 것도 만들어 달라며 너도나도 교과서를 내밀었다. 우쭐한 마음에 들떠 우리는 작업시간을 대폭 늘려 고객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아이들의 교과서 모퉁이는 하나둘 우리의 그림들로 채워졌고 이 존재감 없던 꼬마 화가 콤비는 학년 내내 주목을 받았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그는 커서 만화가가 될 거라 선언했고 나에게도 이 꿈에 동참하기를 권했다. 하지만 강냉이만큼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건 그때도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로봇’만 잘 그렸다. 로봇에는 표정이 필요 없고 움직임도 사람만큼 다이나믹하지 않다. 웬만한 로봇은 보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다 그려낼 수 있지만 결국엔 보고 외워서 따라 그리는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멀리 떨어진 서로 다른 중학교로 진학했다. 평범한 인문계 재학생 코스를 밟으면서 강냉이와 차츰 멀어졌고 그림의 세계에서도 동떨어졌다.

     

이제 다시 잃어버린 꿈에 도전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출판만화의 스케일을 벗어나 애니메이터로. 그 즈음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와 교육 기관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었다. 98년 봄 나는 신림동에 있는 모 애니메이션 학원에 수강 신청을 했다. 하늘에는 구름의 흔적이 걷혔고 벚꽃 시즌을 맞이한 거리는 보란 듯이 밝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내 앞길도 저렇게 빛날 수 있을지. 강냉이는 만화가의 꿈을 이루었을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을 걸 보니 아직 인가 보네. 지난 시간 그림을 그리진 않았어도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은 잃지 않고 살았다. 학원 정문을 나서면서 2년 전 게임스쿨에 등록할 때처럼 가슴 한 컨이 웅장해졌다. 한국의 토미노 요시유키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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