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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Oct 19. 2023

최선의 레이스

마지막 학력고사가 치러졌던 1992년 초가을 오후. 흙바닥 운동장에서 여섯 명의 학생들이 어정쩡한 자세로 모여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입 학력고사 체력장 검정의 마지막 종목인 1000m 오래달리기. 20점이 배정된 체력장은 사실상 거저먹는 점수였다. 전교생이 만점을 받는 걸 목표로 진행된 검정은 행여 만점을 받지 못해 입시에 지장을 주는 사태를 막고자 학교 측은 적당한 봐주기와 기록 부풀리기를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예상대로 대다수 학생들은 마지막 종목인 오래달리기를 앞두고 만점 커트라인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점을 받지 못한 이들은 강제로 오래달리기를 해야 했고 만점 턱걸이에 실패한 나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 반 탈락자 여섯 명은 일찌감치 귀가하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땀에 절은 체육복을 그대로 입은 채 다시 운동장으로 향했다.

      

어차피 니들 다 만점 줄 거니 적당히 뛰고 가자는 지도교사의 말투에는 성가시고 쓸데없는 일을 떠맡았다는 짜증이 배어나왔다. 그렇게 봐줬는데도 만점을 못 받은 비리비리한 놈들 때문에 내가 지금 퇴근도 못하고 이런다 라는 말로 해석되었다. 지도교사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대충 완주만 해도 모자라는 점수를 채우는 데 지장이 없었고 설령 그렇지 못해도 어떻게든 만점을 조작해낼 것이다. 애초부터 이 오래달리기는 단지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스타트 라인에 같이 선 다섯 명을 보며 나는 본능적인 수치심과 경멸감을 느꼈다. 이들은 한눈에 봐도 운동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체형이거나 지병을 가진 아이였다. 이들과 한 집단에 속한 것도 창피한 마당에 여기서도 지는 건 자존심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반드시 1등을 하고 말겠다는 오기가 저절로 발동됐고 운동화 끈을 한번 더 팽팽히 조여 맸다.

     

출발신호와 함께 나는 있는 힘을 모아 선두로 내달렸다. 총 다섯 바퀴를 돌아야 하는데 두 바퀴를 도는 동안 내 앞을 치고 나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거봐, 너희들이 따라올 수 있을 것 같니. 나머지 세 바퀴도 이렇게 달리면 문제없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내 불규칙한 숨소리가 어깨 너머로 다가오는 순간 이 레이스가 결코 수월하지 않을 거라는 불길함이 밀려왔다.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보는 순간 확신했다. 니들도 나처럼 진심이구나. 대충 달리고 끝내려는 마음 따위는 없구나. 다급함에 이를 악 물고 발을 내딛었지만 의지와 달리 발걸음은 무뎌지고 숨은 한계까지 차올랐다. 다행히 나만 지친 건 아니었고 이들도 초반에 에너지를 고갈시켜 페이스를 유지할만한 체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모두가 사실상 걷는 속도로 힘겹게 나아가는 와중에 나는 아슬아슬한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한 녀석이 결국 앞질러 내달렸다. 간격은 불과 2~3 미터에 불과했지만 잡힐 듯 말 듯 끝까지 추월을 허용하지 않은 채 선두로 들어왔고 나는 뒤이어 결승선을 통과했다. 줄줄이 나머지 네 명이 들어왔고 우리 모두 아무런 도움 없이도 제 힘으로 만점 커트라인을 넘어섰다. 지도교사는 따로 기록을 손볼 필요가 없는 걸 재차 확인한 뒤 운동장에 널브러져 있는 우리를 구석으로 몰아내고 다음 차례를 준비했다.

      

반이 바뀐 오래달리기는 계속 이어졌고 이러한 풍경은 반복되었다. 다들 만점을 획득했지만 딱히 기쁜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완주를 축하하며 서로를 토닥이는 훈훈한 모습도 없었다. 다들 땀이 눌러 붙은 체육복을 갈아입지도 않고 가방을 챙겨 교문을 나섰다.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은 한 아이와 하교하는 길에 그는 짜증 섞인 말투로 내뱉었다. 아 씨발, 나는 대학 안 갈 건데 체력장은 왜 해야 되냐. 나는 속으로 그러게, 나는 대학가야 되니까 그렇다 쳐도 너는 왜 그렇게 죽어라 뛴 거니. 하지만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모두가 열심히 달렸음에도 아름다운 기억을 공유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경쟁. 고3 인 우리에게 경쟁이란 늘 꼬리처럼 따라다닌 익숙하고 떨쳐낼 수 없는 것이었다. 모두가 경쟁을 강요했고 경쟁이 필요 없는 자리에도 우리는 경쟁의 물결에 자진해서 몸을 맡겼다. 경쟁에 이기는 것만이 자신을 지켜내는 힘이라 믿으며. 하지만 낮은 곳에서의 경쟁은 어딘가 처연하고 왜곡된 표면을 내재하고 있다. 패자만 남는 게임이니까. 어른이 되어서도 말단에서 버둥거리며 가치 있는 경쟁에서 이탈하고 있는 내 모습을 접할 때면 문득 이날이 떠오른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승리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레이스. 앞선 이들이 떠난 곳에서 남아있는 자들이 고작 몇 발 앞서고자 발버둥 치던 그 순간을 말이다. 이것도 최선이라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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