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가 데뷔한 2007년. 나는 긴 백수생활을 끝내고 들어간 회사에서 보통의 신입 직원들처럼 해야만 하는 일을 기계처럼 반복했다. 쉬는 주말에는 종일 침대에 누워 리모컨 버튼을 눌러대거나 가끔 만나는 지인들과 술이나 퍼마시며 저렴하고 무의미한 대화들을 주고받았다. 애인도 없고 돈도 없고 희망도 없던 그 시절, 티비 화면을 화사하게 채우던 9명의 소녀들이 뭉게구름처럼 둥실둥실 나에게 찾아왔다. 서른이 넘어 아이돌 팬질을 한다는 건 활력을 주기도 하지만 내비치기 힘든 부끄러움을 감내하며 부차적인 노력도 병행해야 했다. 앨범을 반복해서 듣고 수시로 근황을 업데이트하고 가요프로와 예능을 챙겨보는 일. 그때의 나는 순수한 마음 이면에 무조건적 관심과 애정을 줄 대상을 찾아 헤매던 시기였다.
2년 뒤 드디어 무대에서 이들을 직접 기회가 찾아왔다. 소녀시대 첫 단독 콘서트. 아이돌 콘서트 직관도 처음이지만 스탠딩 관람도 첫 경험이었다. 어린 관객들 속에서 삼십대 아재가 제대로 버틸 수나 있을까 하는 우려는 조명이 켜지고 9명의 소녀들이 등장하는 순간 일시에 증발해 버렸다. 콘서트장은 현실과 유리된 완전한 이세계였다. 나는 작은 체구의 핸디캡을 안고도 멤버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게릴라처럼 치고 빠지며 분투했다. 절정으로 치닫던 후반부, 소녀들은 각자 흩어져 관객들 앞에서 아이컨택과 하이파이브를 날렸다. 그 순간 제시카가 내가 있는 구역으로 사뿐사뿐 다가왔다. 나는 잠시 인(人)의 장벽이 헐거워진 틈을 타 쏜살같이 무대 쪽으로 돌진했다. 제시카의 아이컨택을 받자마자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들었다. 두 사람의 손바닥 절반이 맞부딪히는 순간, 이 가난한 영혼은 은총을 입어 황홀경에 빠져들었고 공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오늘부로 나의 최애는 제시카 너야.
이후 매년 콘서트 장을 찾는 건 중요한 이벤트가 되었고 소녀시대는 승승장구 앞으로 나아가며 대한민국 대표 걸그룹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그러나 나와 하이파이브를 맞췄던 그녀, 제시카가 탈퇴하고야 말았다. 7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는데. 그것도 왜 하필 제시카였을까. 외형적으로 8명이 제시카 한 명의 자리를 메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즈음 나이도 먹고 개개인의 역량도 커진 소녀시대 멤버들은 팀보다 개인 활동에 집중했고 팀 소녀시대의 색깔은 점차 옅어져갔다. 나 역시 예전처럼 소녀시대에 애정을 줄 수 없었다. 제시카의 탈퇴는 단지 1/9이 줄어든 게 아니었다. 사금파리 한 조각이 떨어져나간 그릇은 효용이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니. 소녀시대는 9명이 있어야 완성되는 것이었고 마음 한 구석엔 이별의 절차를 예비하고 있었다.
2015년 11월, 운명의 장난처럼 올림픽공원에서 아이유 콘서트‘Chat-Shire’와 소녀시대 콘서트‘Pantasia’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열렸고 나의 선택은 아이유였다. 소녀시대 콘서트를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는데 내가 그들을 버린 것이다. 아이유의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맞은 편 체조경기장에서 소녀시대의 새 앨범 타이틀‘Lion Heart’가 공연장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제 곧 클로징 멘트를 마치고 앵콜을 부르겠구나. 앵콜은 어떤 곡으로 준비했을까. 대형 포스터에는 제시카가 빠진 8명의 얼굴들이 이제야 왔냐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춘 채 밖에서 콘서트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다.
소녀시대를 떠나보낸 뒤 나는 수많은 걸그룹들의 콘서트를 유랑하듯 관람하며 다녔다. 한눈에 좋아질 수 있다면 한눈에 버려질 수도 있는 게 아이돌 팬의 순환원리 아닌가. 하지만 그 어떤 팀도 소녀시대만큼 일방적으로 마음을 열진 못했다. 과거 100 의 사랑을 소녀시대에게 온전히 다 주었다면 지금은 100 의 사랑을 10 씩 쪼개어 기계적으로 배분하는 느낌이었다. 이제 삼십대가 되어버린 그때 그 소녀들은 여전히 따로 또 같이 활동하고 있다. 첫사랑이 기억 속으로 봉인된다는 심정이 이런 것일까. 힘이 들 때 힘을 내라 말해준 소녀들을 이젠 정말 담백하게 보내줘야지. 안녕 나의 소녀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