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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Nov 15. 2023

플루토와 지상 최대의 로봇

넷플릭스에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가 애니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플루토의 원작은 일본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의 대표작 철완 아톰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지상 최대의 로봇’ 이다. 아톰 애니메이션은 60년대, 80년대, 00년대에 각각 제작되었는데 내가 직접 본 건 80년대 작품으로 돌아온 아톰이라는 제목으로 KBS에서 방영되었다. 지상 최대의 로봇은 이례적으로 두 편으로 나눠 방영되었고 아마도 아톰 애니를 봤던 사람이라면 기억이 날 것이다. 나 역시 방영된 지 30년을 훌쩍 지났지만 장면 장면이 생생이 그려질 만큼 인상적으로 각인되던 에피소드였다. 최강 로봇 플루토가 지구 최대의 로봇 7대를 도장 깨기 식으로 하나씩 격파해 가는데 로봇만화에 빠져있던 나에게는 이보다 더 흥미로운 전개가 없었다. 

     

데즈카 오사무의 아톰은 패전 이후 절망에 빠져있던 일본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던 기념비적인 작품이지만 만화는 그 속에 더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의 작품을 한번이라도 접해본 사람들은 단지 만화를 잘 그리고 내용이 재미있다는 차원을 넘어선 나름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반전주의자인 그는 아톰에서 인간과 로봇의 공존에 대한 진지한 철학적 고민들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다. 아톰 만화 속 로봇들은 감정이 부재한 일반적 기계형 로봇이 아닌 인간을 닮은 형태를 띄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안드로이드처럼 인간과 구별되지 않을 만큼 흡사한 건 아니지만 인간처럼 말을 하고 사고를 한다는 자체가 인간의 영역을 언제든 넘어설 수 있다는 설정을 가능하게 만든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뛰어난 인공지능과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다룬 컨텐츠들이 쏟아져 나온 뒤라 메시지 자체가 낡은 느낌도 들지만 60년대라는 시대를 감안하면 데즈카 오사무가 왜 그토록 추앙받는 만화가가 되었는지가 이해된다. 

    

플루토를 그린 우라사와 나오키 역시 데즈카 오사무에 대한 기본적인 존경의 마음을 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새로운 설정이 더해지긴 했지만 기본 포맷과 캐릭터들은 모두 그대로 가져간 다음 살을 입혔다. 사실 대가의 작품을 리메이크 한다는 부담감은 인기 작가인 우라사와 나오키에게도 쉽지 않은 시도였을 것이다. 특히 한 시간도 안 되는 원작 애니를 만화책 여덟 권 분량으로 풀어내려면 추가와 재창조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나온 애니메이션도 만화와 내용이 거의 일치하며 여덟 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으로 제작되었다. 나는 플루토를 하루에 네 시간씩 이틀에 걸쳐 완주했다. 아톰의 팬이자 지상 최대의 로봇 에피소드를 알고 있는 나에게는 플루토가 당연히 재미없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 보고 난 다음 과연 아톰을 모르는 시청자들은 어떻게 봤을까 생각해보니 답이 썩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보면서 지루했다는 평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나에게 우라사와 나오키는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공존하고 있다. 과거 20세기 소년의 압도적인 초반부에 홀려 한권씩 사 모으다 허무했던 후반부에 질려 결국 다 팔아버린 적이 있었다. 그의 대표작 몬스터 역시 20세기 소년에 비하면 사정이 훨씬 낫지만 이 역시 거창한 기대감에 비해 마무리가 아쉬웠다. 그는 좋은 스토리텔러의 재능을 지녔지만 용두사미라는 이미지도 떠나지 않아 마냥 호의적인 시선을 갖기 힘든 측면이 있다. 플루토는 원작이 있으니 그러지 않을 거라 봤는데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설명 집착적 방식은 이야기의 진행에 수시로 브레이크를 잡았다. 그래, 말하려는 게 뭔지 아니까 이제 그만 속도 좀 내면 안 되겠니 라는 감정이 절로 나온다. 여덟 시간을 채우는 자체도 쉽지 않은데 늘어난 분량의 상당수가 예측 가능한 방향의 감상적 주장의 반복으로 흘러가니 지루함이 틈새를 파고들었다. 액션 요소의 부재도 간과할 순 없다. 특히 다양한 무기와 개성을 가진 로봇들의 화려한 전투씬을 기대했던 독자들은 벙찐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전체를 통틀어 제대로 된 액션 장면은 십 분도 되지 않고 메인 빌런인 플루토는 극 후반이 되서야 얼굴을 드러낸다. 다만 이건 우라사와 나오키의 스타일을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측 가능한 지점이었다. 그는 액션을 선호하지도 잘 그리지도 않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는 아톰과 엡실론을 제외한 나머지는 배경 스토리 없이 플루토의 희생양에 불과했지만 작가는 나머지 로봇에도 그럴듯한 사연과 스토리를 창조해 넣었다. 이 점이 참 좋았는데 특히 원작에서 별 존재감 없이 끔살당한 게지히트 형사 로봇을 전면에 내세운 건 효과적인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게지히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순간 자연스레 미스터리 수사물 성격을 띄게 되고 이는 우라사와 나오키 스타일의 익숙한 장르적 공식을 만들어내는 토대로서 작용된다. 그 중 PTSD 로 고통 받고 있던 노스2호의 피아노 에피소드는 전편을 통틀어 가장 감동적이었다. 끝내 망토를 벗고 회오리 속으로 날아오르며 최후를 맞는 순간은 개인적인 플루토 최고의 명장면으로 기억되었다. 

     

플루토의 만화 속 배경과 원작이 나온 시기를 유추해보면 우라사와 나오키는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명목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과 조지 부시를 대놓고 저격하고 있다. 만화 속 트라키아 합중국은 미국, 페르시아는 이란 중동지역을 암시하며 강대국의 이권을 위해 실체가 없는 존재를 만들어내고 학살하는 과정은 당시의 국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결국 플루토를 탄생하게 만든 건 바로 당신들의 책임이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관점에 따라 불편한 지점을 만든다. 만화를 계속 보다 보면 중동은 피해자고 미국이 악이라는 단선적인 결론을 은연중에 강요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는 작가의 문제일수도 있는데 만화는 더 깊은 다원적 성찰의 단계까지 들어가지는 못하고 마무리되었다. 최초로 인간을 공격한 로봇 브라우1589 에 대한 서사도 빠져있고 트라키아 합중국을 조종하던 슈퍼컴퓨터 인형의 정체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끝나버린 점이 아쉬웠다.

     

나는 데즈카 오사무의 열렬한 팬이지만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가 원작을 훼손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상 최대의 로봇이 재미난 이야기인 건 맞지만 데즈카 오사무가 그 안에 그렇게까지 깊은 의미를 담아낼 의도는 없었을 수도 있다. 데즈카 오사무와 아톰을 사랑했던 팬들에게는 결과물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우라사와 나오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증오 속에서는 아무 것도 태어나지 않는다는 게지히트의 마지막 메시지는 진부한 감성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플루토의 본질을 꽤뚫고 있는 작가의 진정성 있는 멘트로 받아들여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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