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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Nov 28. 2023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드라마를 볼 때 항상 작가 이름을 먼저 살피게 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의 작가 중 한 명이 ‘눈이 부시게’ 의 이남규 작가라는 걸 알고 드라마에 대한 신뢰감을 얻었다. 원작 웹툰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잔잔한 힐링물의 형태를 띄겠구나 라는 짐작은 충분히 가능했고 결과물도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사실 작가가 다른 사람이라 해도 정신병동 이야기를 다룬다는 자체만으로 내 관심은 증폭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12부를 완주하고 나니 기대감을 충족하는 걸 넘어 적잖은 치유까지 받았던 의미 있는 드라마였다.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해보자면 나는 이십대 초중반 우울증을 겪었다. 당시엔 그게 우울증이라는 걸 모르고 지나쳤지만 그건 우울증이 맞았다. 그것도 꽤 심각한 상태였다는 걸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된 것이다. 사람 만나기를 두려워하고 매사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뭘 해도 기운이 나지 않았다. 설령 우울 증상을 인지했다 하더라도 치료를 받거나 도움을 청하지는 않았을 게 틀림없었다. 지금보다 정신병에 대한 편견의 문턱이 몇 단계 더 높았던 시절이었고 나는 이를 부정하려 애썼을 테니까. 대략적인 원인을 유추해보면 서울로 올라오면서 갑자기 바뀐 환경, 맞지 않는 전공, 교우들과의 부적응 등이 있겠지만 그것들이 어떤 인과관계로 이어진 거라 단언할 순 없었다. 검은 개라고 불리는 이 질병은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과정으로 예측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찾아와 사람을 한없이 무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정적 문제는 내 우울감이 외형적 변화의 낙폭이 크지 않아 주변에서 눈치 채기가 상당히 어려웠다는 점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조용하고 혼자 있길 좋아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내향적인 성격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친구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친한 친구 몇은 늘 주변에 있었고 학교생활도 모나지 않았다. 성적도 우수한 편이고 왕따를 당하거나 사춘기 열병을 앓지도 않았으며 정신적으로 크게 흔들릴만한 사건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은 자유로운 방임주의 스타일이라 지금까지 무난히 잘 지냈으니 앞으로도 그럴 거라 믿었다. 대학 성적이 바닥을 찍고 평소보다 외출을 더 꺼려했을 때도 원래 성격이 저러니 놔두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고 나 역시도 그랬다. 하지만 상처는 곪아갔고 정신은 위험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음에도 끝내 외면했다. 불안과 불면 증상이 늘면서 사람들을 피했고 실제로 이 시기에 많은 관계들이 끊어졌다. 그때 적극적인 치료를 받았다면 나의 이십대는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근본이 내향적인 사람이지만 에너지와 호기심이 적은 사람은 아니었기에 적절한 동력만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는데 기회를 놓쳐버렸다. 지금은 많은 부분을 극복했지만 여전히 그때의 시간을 떠올릴 때면 마음이 불편하고 먹먹해진다. 

    

이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정신병동 환자에 대한 예시와 표현방식은 의외로 가볍지 않았다. 물론 드라마라는 장르의 특성상 어느 정도 비현실적이고 인위적인 클리셰를 피할 순 없었지만 정신병에 대한 표피적 접근에서 벗어나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들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 이는 정신병원 간호사 출신 원작자의 실제 경험이 바탕 되었기 때문이다. 연기적인 부분도 나무랄 데가 없다. 무엇보다 주요 축인 간호사 5인방의 캐릭터 설정과 케미가 정말 좋다. 주인공 박보영의 외모가 간호사답지 않게 튀고 너무 선한 사람들만 나온다는 지적도 있지만 다들 주위에서 충분히 접해볼 수 있을 법한 캐릭터라서 공감이 갔다. 강한 빌런이 등장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좋은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대한민국 의학 드라마의 고질병인 로맨스는 어떨까. 여기에는 두 쌍의 러브라인이 진행된다. 주인공 다은과 항문외과 의사 고윤의 로맨스와 정신병동 의사 여환과 간호사 들레의 로맨스. 두 러브라인 모두 진행에 전혀 거슬리지 않게끔 담백하게 표현되었다. 특히 부자 의사 여환과 가난한 간호사 들레의 스토리는 세상에서 가장 진부한 설정 중 하나지만 이 뻔함조차 얼마나 아름답게 드러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어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현실과 맞지 않다는 주장에 굳이 반박할 의도는 없지만 드라마 속에서 이 정도 로맨스를 느껴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 아니겠는가. 다은의 우울증 에피소드 부분이 너무 길다는 지적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나 역시 드라마를 통해 정신병동 환자들의 다양한 유형을 더 알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많은 케이스가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울증 걸린 정신병동 간호사라는 설정은 이야기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확장시켜 주는 소재로 작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다. 괜찮지 않은 사람에게 괜찮니, 괜찮다 라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 말로 둔갑할 수 있단 말인가.     


- 우리는 모두 경계에 서 있다.      


누구나 정신병에 걸릴 수 있다는 말로 이 드라마가 전해주는 총체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정신병에 대한 편견을 일부러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단지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존재들이고 사회적으로 강요되고 학습된 분위기 속에서 편견과 배척의 씨앗이 자연스레 퍼져나간 게 아닐까. 정신병은 다른 병들처럼 완치 효과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측면이 있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마음의 병도 몸의 병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더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얼어붙은 시선도 따뜻한 곳으로 물길을 틀수 있지 않을까. 커튼 없는 정신병동의 아침이 다른 병동보다 빨리 오듯 이들의 아침이 누구보다 기다려지는 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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