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미유 Nov 17. 2023

애니메이터 (5화 새천년은 그렇게 밝아오고)

밀레니엄 새천년을 몇 달 앞둔 그해 가을, 대학로 인근의 한 컴퓨터 그래픽 학원의 웹디자인 과정 상담을 받았다. 2년 전 애니메이션 학원의 슬픈 기억이 재생되어 상담을 시작하기도 전에 질문부터 던졌다.

“제가 그림을 잘 못 그리는데 괜찮을까요?” 

“잘 그리시면 도움은 되겠지만 상관없어요. 여기는 그림을 배우는 곳이 아닙니다”

“많이 못 그리는 편입니다. 완전.... 엄청 소질이 없다고 봐도 되요”

자존심 때문에 이런 말까지는 안하려고 했지만 확실한 답을 듣고 싶었다. 내가 가능성이 있는지를.

“열심히 하시면 되죠. 이쪽 계통은 처음이세요?”   

“얼마 전 웹마스터 과정 이수했고 일러스트, 포토샾 조금 다룰 줄 압니다. 근데 웹디자인 쪽은 전혀 몰라요.” 

“아~ 그러시군요. 배우는 데 훨씬 유리하시겠네. 걱정하지 마세요. 잘 하실 겁니다.”

어차피 웹디자인에 꽂혀있던 때라 학원 측에서 무슨 말을 해도 등록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뻔한 영업 멘트일지라도 잘할 거라는 기대의 말을 듣고 싶었다.

     

수업은 웹마스터 과정보다 확실히 재미있었다. 인터넷과 책에서 온갖 이미지들을 찾아내 스캔, 편집, 가공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집에 와서도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뚱뚱한 CRT 모니터의 전자파를 맞아가며 수시로 눈을 찡그리게 만드는 안구 건조증도 열정을 막지 못했다. 부모님은 이런 내 모습을 엿보며 드디어 이놈이 진득하게 뭘 좀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는지 일체의 잔소리를 거두었다. 애니메이션 학원에서 배웠던 그래픽 툴 사용법도 적잖게 도움이 되었다. 어도비 사의 프로그램들을 주로 사용했는데 속성 자체가 비슷해서 하나를 잘 다루면 다른 유사 툴들에 대한 숙련도 어렵지 않았다. 학원에 다니는 동안 나는 일러스트, 포토샾 외에도 드림위버, 플래쉬, 프리미어, 3D MAX 같은 그래픽 개발툴들을 대부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불안은 영혼을 잠식.... 아니, 포트폴리오를 잠식해왔다. 내재되어 있던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디밀었다. 언제부턴가 강사에게 색감과 구성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 시작했다. 그 말속에는 디자인에 대한 거시적인 이해를 포괄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 기술은 괜찮은데 감각이 떨어진다는 말인 셈이다. 그 감각을 배우기 위해 이렇게 학원에 등록한 거 아니냐고 항변했지만 이건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에게 미적 감각이란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는 되도 안한 짝사랑 같은 것이었나. 하긴, 평소의 절망적인 패션 감각과 미에 대한 초월적 무관심을 생각한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인가. 나에 대한 평가는 처음과 달리 뒤로 갈수록 점점 박해지고 있었다. 

     

어쨌거나 모든 과정이 끝났고 학원 측에서 알선한 홈페이지 제작 알바가 들어왔다. 보수는 적지만 경험을 쌓는다는 측면에서 한번 해보라고 권했는데 이건 적다는 수준을 넘어 사실상 열정 페이에 가까웠다. 계약서 같은 것도 안 쓰고 구두로 얼마 주겠다는 불확실한 약속만 받고 무작정 일을 시작했다. 가보니 홈페이지의 기본 플랫폼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내가 하는 일은 수백 개의 전자부품 사진들을 일일이 스캔해서 올리는 거였다. 웹디자인은 커녕 그냥 쌩 노가다에 가까웠다. 홈페이지 제작 알바라더니 왜 이런 것만 시키느냐고 따졌더니 원래 처음엔 다 그런 거 한다면서 얼버무렸다. 한 달 가량 고생해 밥값 몇 푼 받고나자 학원에서는 우리 할 일은 끝났으니 취업은 알아서 하라며 선을 그었다. 나는 그동안 제작한 포트폴리오를 들고 웹디자인 관련 구인란을 찾아다녔다. 맞닥뜨린 현실은 예상보다 더 암울했다. 여러 곳에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고 면접을 봤지만 받아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연락이 온 곳은 지독히 영세한 업체거나 말도 안 되는 수준의 페이를 내걸었다. 나는 더 이상의 구직활동을 포기했고 출력했던 포트폴리오를 쓰레기통에 쳐 박았다.

     

1999년 12월 31일 밤. 밀레니엄 새천년을 몇 시간 앞둔 그때 나는 다니고 있던 성당의 청년성가대에서 송년미사를 드렸다. 미사가 끝나고 청년들은 밀레니엄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추위 속에서도 밖으로 뛰쳐나왔다. 마침내 시계가 2000년의 시작을 알렸고 우리 모두는 함성을 질렀다. 걱정했던 Y2K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고 축하의 신호를 보내듯 하늘에서 가는 눈발이 내렸다. 그날 밤 청년들은 성당 지하실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새천년이 밝았지만 바깥 풍경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게 평온했다. 세상은 바뀌지 않고 이렇게 잘 돌아가고 있는데 지금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술기운에 동승한 자괴감이 몰려들었다. 대학에 막 입학했을 무렵 이십 대에 그려낼 나의 미래를 막연히 꿈꾸곤 했다. 군 면제를 받고 스물셋에 졸업을 하자마자 취업을 한 뒤 또래의 여성을 만나 뜨거운 연애를 거쳐 스물여섯에 결혼을 하고 다음 해 아이가 생기고.... 전부 계획대로 되리라는 기대는 안했지만 작금의 현실을 돌아보니 쓴웃음만 번지는 부질없는 꿈이었다. 애니메이터로 시작해 웹마스터 웹디자인을 거치는 3년의 실패로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건지. 내 나이 스물일곱, 더는 취업을 미룰 의욕도 명분도 남아있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니메이터 (4화 웹마스터냐 웹디자인이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