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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Feb 20. 2024

태풍 셀마가 지나간 자리

영훈과 성자의 이야기

87년 여름, 어머니가 오랜 암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그날은 역대 급 태풍 셀마가 한반도에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남기고 소멸한 날이었다. 여름방학이 막 시작되던 그때 나는 형과 함께 고모네 집에 있었고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우리를 데리러 온 삼촌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고모는 도착할 때까지 형과 내 손을 꼭 잡은 채로 말했다.

“마음 단단히 먹거라.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

고모 역시 조카들에게 부고 소식을 전하는 게 부담스러운 지 다른 말은 일절 없었다.

      

우리 집인 무지개 아파트로 들어서자 벌써 친척과 문상객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당시엔 장례를 병원이 아닌 집에서 치르던 시절이었다. 뒤엉켜진 현관의 신발들을 헤치고 거실로 들어서자 성자가 달려 나와 우리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눈에는 이미 눈물자국이 선명했다. 곧바로 약속이나 한 듯 친척들이 차례로 다가와 우리 형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눈물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이제 어머니가 세상에 없으니 슬프고 눈물을 펑펑 흘러야 정상인데 그렇지 못했다. 주위에 사람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당장은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나는 뇌가 정지한 듯 멍하니 사람들 속에 파묻혀 삼일을 보냈다. 어머니를 묘지에 묻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지금의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머니는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아버지가 약속했는데 지금 저 흙속에 묻힌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많던 사람들이 다 떠나자 집 안의 공기는 가라앉고 정적이 자리를 채웠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난생 처음 아파트로 이사 간다고 좋아했었는데 이 무지개 아파트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어두운 그림자가 머물렀다. 어차피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도 집에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아버지, 성자, 영훈, 형, 나)  다섯은 평소보다 대화가 줄고 식욕도 줄었다. 그나마 성자는 빨리 회복하고 제자리를 찾았지만 남자 넷의 상태는 계속 좋지 않았고 특히 아버지는 슬픔의 우물에서 영영 헤어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대략 일주일쯤으로 기억한다. 잠결에 악몽을 꾸다 어둠속에서 깨어났는데 뭐라 형언하기 힘든 공포가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순간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고 나는 울면서 성자와 영훈이 있는 안방으로 달려갔다. 불을 끈 채 누워서 티비를 보고 있던 두 사람은 갑작스런 손자의 들이침에 놀라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대책 없이 눈물만 쏟아냈다. 내 몸속에 어쩜 이렇게 많은 눈물이 담겨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마구 뿜어냈다. 곧바로 형도 달려와 나처럼 울음을 터뜨렸고 건넌방에서 자고 있던 아버지도 둘의 울음소리를 듣고 들어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영훈이 나지막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니는 방에 들어가 있그라. 애들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영훈은 아버지를 밖으로 내보낸 뒤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한참을 더 우리 형제는 울었다. 두 사람은 딱히 말을 하지 않은 채 그냥 옆에서 쓰다듬거나 안아주기만 했다. 그렇게 실컷 다 울고 나니 목이 아프고 배가 고파졌다. 코를 풀고 눈물을 다 닦아내자 성자는 부엌에서 얼음을 띄운 미숫가루를 가져왔고 우리는 언제 울었나 싶을 정도로 단번에 들이켰다. 성자는 이제 다 울었냐며 웃었고 영훈은 다시 티비를 켜고 아버지를 불렀다.     

막상 그렇게 울고 나니 창피함이 들기도 했지만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후련했다. 언젠가는 치러야 할 과정이었다. 우리는 어머니에 대한 애도를 충분히 하지 못했고 비로소 그걸 제대로 이행한 것이었다. 그날 성자와 영훈은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애들 보니까 당신 오래 살아야 되겠소”

“내가 오래 살아서 뭐 할라고. 당신이 오래 살아야 애들 밥도 해주지”

“같이 오래 삽시다. 아이고, 귀신 다 되도록 살면 징그러울건데”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은 짧았지만 이들은 내가 완전한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아 오래 살겠다는 그날의 약속을 지켰다.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하면 나는 그 무시무시했던 태풍 셀마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어떤 태풍이든 결국엔 소멸하기 마련. 그날 밤 나는 앞으로 어떤 강한 태풍이 밀려와도 의지하고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두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태풍이 지나고 나면 따뜻한 햇살이 비출 수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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