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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Mar 26. 2024

계모와 시어머니

성자의 이야기

명절 때 가족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나면 돌아가신 성자와 영훈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 주고받을 때가 있다. 공유했던 시간이 많았던 만큼 할 말이 많았지만 지금의 내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성자에 관해선 좋은 말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보통은 고부간 관계가 나빠도 돌아가시고 나면 묵은 감정이 희석되기 마련이다. 심성 곱고 여린 분이 아직도 이럴 정도면 오죽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다. 성자가 어머니를 가혹하게 대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돌아가신 친어머니와 성자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특별히 좋다고 할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여타 고부관계의 틀에서 크게 벗어남이 없었다. 어머니는 맏며느리답게 집안 살림에 능숙했고 부지런하며 눈치도 빨랐다. 성자처럼 기가 센 시어머니 밑에서 지낸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무난하게 잘 해냈다. 외유내강 스타일로 평소엔 자기주장을 안 하지만 꼭 필요할 때는 조리 있게 성자의 비위를 맞추고 설득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고통스런 항암투병을 몇 년이나 버텨냈고 머리가 빠지고 체중이 40킬로 밑으로 떨어질 때까지도 자식들 앞에서 눈물 한 번 보인 적 없었다. 우리를 만날 때면 항상 가발을 쓰고 진한 화장을 했는데 그때는 어려서 몰랐지만 기본적인 내면이 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새어머니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녀는 조그만 금은방 가게를 운영했는데 집안일에 소질이 없고 경험도 적었다. 외유내유 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겉과 속이 다 착하고 온순한 분이지만 친어머니 같은 눈치와 요령은 없었다. 당연히 성자의 눈에는 이전 며느리에 비해 모든 게 탐탁지 않았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불만을 표출하며 며느리 대접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그럴 때마다 새어머니는 대꾸 한번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특히 그 시절엔 계모에 대한 나쁜 편견이 지금보다 심했다. 전래동화에서도 계모는 심성이 고약하고 본처 자식들을 해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계모야말로 의지할 곳 없이 가장 약하고 불안정한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너희 엄마 계모 아니야? 라는 말은 계모라는 단어의 함의를 들춰볼 때 대단히 폭력적인 말이라 생각한다.

      

새어머니가 살림에 서툰 건 맞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특히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집안에 수험생이 둘이 되자 그녀는 매일 도시락 4개를 쌌다. 바깥일을 하면서 1년 내내 새벽마다 도시락 4개를 싸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럼에도 형과 나는 새어머니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머리로는 그러면 안 되는걸 알면서도 가슴이 거부했다. 엄마라는 말도 하지 않았고 의례적인 답변 외에는 대화도 주고받지 않았다. 성자가 심하게 몰아 부칠 때도 방관하고 방으로 쪼르르 들어가 내 할 일만 했다. 

     

성자와 새어머니의 갈등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전날 너무 고단했는지 새벽에 깨지 못한 그녀는 우리 도시락을 싸지 못했다. 허둥지둥 뭐 사먹으라며 돈을 쥐어주는 걸 목격한 성자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떻게 애들 도시락을 안 쌀 수 있냐며 아침부터 도끼눈으로 고함지르고 욕을 해댔다. 새어머니가 도시락을 잊은 건 몇 달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때 뭐에 씌었는지 나는 성자에게 엄마한테 도대체 왜 그러냐며 대들었다. 성자는 당황했고 대통령도 안 무섭다는 그녀도 화가 난 손자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뒤 비로소 새어머니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아까 엄마라고 불러줘서 고마왔다고. 덧붙여 이런 말도 들었다. 나는 너희들이 반찬이 맛없다고 투정부리며 화라도 내줬으면 좋았겠다고. 엄마라고 안 불러도 좋으니 그렇게 표현을 해달라고 말이다. 이후 성자와 새어머니가 손을 맞잡고 화해하는 훈훈한 결말이 이어졌으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성자는 여전했고 새어머니 역시 여전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성자도 우리 눈치를 보는 건지 너무 과하다 싶은 표현은 자제했다.

      

요즘 어머니 건강이 부쩍 안 좋아지셔서 걱정이다. 여기저기 다 아플 나이이긴 하지만 고생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을 못 받고 돌아가실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남아 있는 시간이라도 아들 노릇을 해야 할 텐데 늘 생각만 하고 실천은 못하고 있다. 훗날 저승에서 성자가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 제대로 된 사과는 해야 하지 않을까. 얘야, 나 때문에 힘들었지? 그땐 내가 너무 심했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사이좋게 지내자꾸나. 그러면 어머니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어머니, 저는 싫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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