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미유 Apr 01. 2024

1994년 여름의 에어컨

영훈과 성자의 이야기

살면서 성자와 영훈이 다투는 모습을 보는 건 드문 광경이었다. 두 사람의 금술이 너무 좋아서라기보다 애초부터 힘의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성자의 강한 기운과 맞서기에는 영훈의 힘이 늘 부족하고 버거웠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데서 두 사람이 충돌한 적이 있는데 그 발단은 에어컨이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1993년, 우리 가족은 성자와 영훈을 부산에 남겨두고 서울 구로동으로 이사를 갔다. 그해 봄 아버지는 큰 맘 먹고 GoldStar 마크가 찍힌 금성 에어컨을 장만했다. 지금은 집집마다 에어컨이 있는 게 당연하지만 당시 가정집 에어컨 보급률은 20프로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당해 여름이 이례적으로 기온이 낮고 비도 잦아 에어컨을 켤 일이 없다시피 했다. 비싼 돈을 주고 산 에어컨이 무용지물 될 판이었는데 이듬해 생각지도 못한 역대 급 무더위가 찾아오고 때맞춰 성자와 영훈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뚱뚱한 체격에 더위를 많이 타는 성자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에어컨을 켜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찬바람이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영훈이 에어컨을 끄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누구 장단에 맞춰야 할지 혼란스러워 했는데 문제는 아버지와 어머니조차 의견이 갈렸다. 아버지는 에어컨을 켜자는 쪽이었고 어머니는 끄자는 쪽으로 편이 정확히 2:2로 나누어졌다. 평소 판세로 보면 성자 > 영훈, 아버지 > 어머니 이므로 에어컨을 켜는 쪽이 우세였지만 영훈의 저항이 의외로 만만찮았다.

     

“당신은 뉴스도 안 보나.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데 에어컨을 켜는 게 말이 되는가?”

구두쇠 절약 정신이 뼛속까지 박힌 영훈은 가뜩이나 에어컨을 산 것도 마땅찮은데 김일성 사망과 맞물린 흉흉한 정세로 애국심마저 더해져 강건하게 맞섰다. 

“이거 보소. 내사 덥어 죽겠는데 에어콩 놔뒀다 뭐할라꼬 그라요. 얼른 켜거라”

선풍기 바람으론 더위가 해소되지 않는지 성자는 웃옷을 벗어 제치며 짜증을 냈다. 이후 두 사람은 하루 종일 에어컨을 끄고 키고를 반복하며 다투었다. 

     

“테레비에서 그러더라. 에어컨 1대가 선풍기 30대 전기세 먹는다고. 이런 비상시에 북에서 쳐들어오면 어쩔라고 그래. 애미야, 내 말이 맞나 안 맞나?”

영훈은 혼자 저항하기 힘들었는지 슬그머니 어머니까지 끌어들였다. 

“북한 아들도 내려왔다 덥어가꼬 도로 올라가뿌릴거요. 니도 덥재?”

낮 시간엔 아버지가 집에 없으므로 자기편이 되어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여긴 성자는 나에게 에어컨 가동을 재촉했다. 솔직히 나도 성자에게 가담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영훈이 내심 이겼으면 하는 삐딱한 바람도 있었다. 사람이란 원래 약자를 더 응원하게 되는 법이니까.

     

하지만 결국 영훈은 1994년 더위 앞에서 항복하고 말았다. 열대야가 한 달 넘게 이어졌고 지금도 역사상 최악의 폭염이라 불리는 2018년과 1,2위를 다투던 해였으니 말이다. 모르긴 해도 그의 자존심에 적잖은 스크래치를 입었으리라. 지독하리만치 더웠던 그해 여름 두 노인이 어린애마냥 투닥거리며 다투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노인과 아이는 공통점이 많다고 했던가. 어릴 때만 해도 두 사람은 크고 든든하기만 한 존재였는데 어른이 되어 보니 그들 역시 아이 같은 구석이 남아있는 평범한 노인들이었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우리는 늘 실패하곤 한다. 성인이 되고 떨어져 살면서 그 점을 헤아리지 못하고 두 노인을 떠나보낸 것이 못내 아쉽고 그리워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