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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Apr 22. 2024

구덕산과 옥봉산

영훈의 이야기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주말 소래산 산행을 시작했다. 300미터도 안 되는 낮은 산이라 운동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지만 뱃살과의 투쟁 중이라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산행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가 있는데 바로 영훈이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형과 나는 고향집 인근 부산의 구덕산을 영훈과 함께 자주 올랐다. 너댓살 즈음의 기억은 진위가 명확하지 않은 파편적 성향을 띄게 마련인데 이 기억은 비교적 구체성을 잃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건 나의 제일 오래된 기억이며 비록 환갑이 지났지만 내 눈에서 영훈의 가장 젊었던 모습이 남아있던 때이기도 하다.

     

영훈은 산도 좋아했지만 사실 강과 바다를 더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낚시를 좋아해서 해뜨기 전부터 낚시도구를 꼼꼼히 챙겨 나가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우리 형제도 영훈을 따라 낚시를 따라간 적이 있는데 전혀 흥미를 갖지 못했다. 가만히 기다리면서 언제 움직일지 모르는 찌만 주시하는 건 한창 주의가 산만한 아이들의 성향과는 맞지 않았다. 낚시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안 영훈은 우리를 산으로 데려갔다. 형과 나는 장난치고 뛰어다니며 구덕산의 흙과 풀을 맘껏 밟았다. 우리의 종점은 정상이 아닌 약수터까지였다. 약수터 앞의 통나무 다리에 도달하면 영훈은 나를 품에 번쩍 안아 다리를 건넜다. 위험할 높이는 아니지만 난간이 없어 혹 헛디뎌 넘어질까 그런 것이다. 나는 영훈의 품속에서 두 발이 떠있던 그 짧은 순간이 좋았다. 충분히 혼자 건널 수 있지만 일부러 다리 앞에서 영훈을 기다렸다. 약수터 매점에서 메추리알을 팔았는데 우리는 산행의 보답으로 늘 메추리알을 먹었다. 우리가 산에 가는 목적 중 하나는 메추리알이었다.

     

이사를 가고 나서도 영훈과의 산행은 지속되었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학교에 가지 않는 일요일 아침마다 동네에 있는 옥봉산을 올랐다. 이번에도 종점은 정상이 아닌 약수터였다. 우리의 활동력이 늘어난 만큼 영훈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영훈은 말수가 적고 재미있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그와 함께 산행하면 어딘가 맘이 편해지는 측면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정말 자연과 친해지길 원하는 사람이었다. 스트레스를 주로 입으로 푸는 성자와 달리 영훈은 조용히 자연과 교감하며 풀었다. 약수터에 도착한 그는 줄서서 바가지에 물을 담아 형과 나의 목을 먼저 축인 뒤 마지막에 물을 마셨다. 한쪽 그늘에 자리를 잡고는 우리가 충분히 놀 때까지 가만히 내버려둔 채 지켜보았다. 약수터 주위를 한참 뛰어다닌 뒤 영훈에게 가면 그제야 바지의 흙을 털고 일어섰다.

     

사춘기 이후로는 그와의 산행이 줄어들었다. 학업이 바빠서기도 하지만 영훈의 몸 상태가 조금씩 안 좋아진 게 큰 이유였다. 해가 거듭될수록 영훈은 집안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어릴 때 나는 등산을 좋아한다고 믿었는데 막상 성인이 되고 산에 가는 일은 드물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등산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영훈과 함께 했던 등산을 좋아했다는 걸. 지난 주말 혼자 소래산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데 즐겁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혼자 하는 목표 지향성 산행은 역시나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카카오맵을 살펴보니 어린 시절 살던 집들은 대부분 철거 되어 사라졌지만 구덕산과 옥봉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다. 비록 그때의 산과 지금과 산이 같지 않을지언정 영훈과의 추억이 남아있는 장소가 하나라도 더 남아있다는 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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