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미유 Apr 09. 2024

투표하기 싫은 이유

총선투표를 앞두고 아직도 찍을 후보와 정당을 결정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기권할 의사도 없진 않다. 지금껏 크고 작은 선거에서 표를 행사하지 않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이번만큼 의욕이 없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잘 알고 있다. 투표는 소중한 권리이자 의무며 내가 기권해도 누군가는 반드시 당선이 된다는 걸. 하지만 아무래도 지난 대선 무렵부터 누적된 정치에 대한 혐오와 피로감이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나는 투표권이 생긴 이래로 항상 소위 말하는 왼쪽을 지지해왔다. 여론조사만 보더라도 지금 40대들의 성향은 대개 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젊은 시절부터 무작정 오른쪽만 찍는 기성세대를 욕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원망했다. 저들은 못 배우고 성숙하지 못한 의식을 가진 자들이라 개도가 필요한 대상이라고까지 생각했다. 7년 전 촛불집회를 추위 속에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나갔고 탄핵이 확정된 후 함께 했던 동료들과 감격에 겨워 술잔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가 정답이라 믿었던 것들이 과연 정당한 것이었는가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찾아들었다. 이는 정치라는 속성이 갖는, 나와 우리 편은 옳고 반대편은 그르다는 이분법적 인식 때문이었다. 몇 년 전 촛불집회를 함께 나갔던 이들과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의견충돌이 난 적이 있었다. 이유는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의 잘못을 강하게 비판했기 때문인데 그럴 때마다 그들은 이쪽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항상 상대편은 더하다는 주장만 했다. 쉽게 말해 너는 이쪽인데 왜 저쪽 편을 드냐는 거였다. 합의라는 게 불가능했고 결과적으로 관계까지 서먹해졌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갈등은 극에 달했다. 거대 양당 정치판에서 진영논리의 괴물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우리는 늘 옳고 상대의 잘못은 과장해서 부풀린다. 실드를 못 치는 사안은 침묵해버리고 상대의 잘한 일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진영은 작은 흠결도 인정해선 안 되고 반대쪽 진영은 악마가 되어야 한다. 진영논리 앞에서 깊은 사유와 판단은 하등 쓰잘데기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인터넷에서는 입에 담기 힘든 온갖 혐오발언이 난무하고 오프에서도 누굴 찍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고 잣대를 들이댄다.

     

지난 대선에서 1찍이니 2찍이니 하는 말을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1찍이면 빨갱이 2찍이면 친일파라는 말도 안 되는 프레임을 씌우고 연령, 성별, 계층 간 갈라치기를 부추겼다. 누구를 지지하건 반대하건 개인의 자유인데 정치에 몰입된 인간들에게는 중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내 생각이라는 게 소멸하고 진영이 결정해주는 것을 내 생각이라 믿는다. 흔히들 투표는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거라 말한다. 지금의 거대 양당은 과연 스스로 차악이라 자신할 수 있는가.

     

친하지 않은 사람과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건 이유가 있다. 정치와 종교는 일견 닮은 점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향을 남이 싫어한다고 해서 화가 나고 다투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정치와 종교는 무언의 선택을 강요하며 그 속에 가치판단이 들어가기 때문에 위험하고 공격적일 수 있다. 존중의 가치가 잘 먹혀 들어가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친한 사람과도 정치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 하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경우엔 선을 넘지 않도록 말수 자체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더 이상 1찍이니 2찍이니 하는 말로 사상 검증을 하지 말자. 정치성향으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정치가 중요하며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오십 가까이 살아보니 세상엔 정치 말고도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만큼 가치 있는 것들이 많다. 짧은 인생 몸속에 괜한 독소를 품지 말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나저나 내일 정말 누구를 찍어야 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