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던 날은 지금도 생생하다. 평소처럼 출근을 해서 일을 하던 중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전원구조라는 오보 기사가 잠깐 뜨더니 곧바로 수백 명의 사람이 죽었다는 기사가 인터넷을 가득 채웠다. 희생자 중 상당수가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학생이라는 말에 회사직원 중 한 명은 갑자기 어디로 전화를 걸더니 안도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경기도 시흥에서 안산은 이웃 도시인데 나도 혹 관련 있는 지인이 없을까 떠돌려봤는데 다행히 알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 후의 이야기는 다들 알다시피 세월호로 인해 나라 전체가 들끓었다. 슬픔과 분노, 자책과 원망이 뒤섞이는 와중에 추모의 물결이 줄을 이뤘다. 특히 안산의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도시 전체가 생기를 잃은 풍경이었고 뭐라 정의내리기 힘든 집단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참사 후 2주 정도 지났을까. 나는 참배를 하기 위해 화랑 유원지 단체분향소를 찾았다. 예년보다 높은 기온의 맑은 봄날 오후였는데 분향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서늘함에 몸이 경직되는 기분이었다. 한쪽 끝에서 끝까지 나란히 늘어선 아이들의 영정사진. 이 많은 아이들이 한날 한 시에 다 죽었다고? 얼굴을 아는 사람은 한명도 없지만 왠지 어디선가 만났을법한 착각이 들만큼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의 목숨 값에 경중을 매겨서는 안 되지만 어린 학생들의 죽음은 확실히 정서를 침입하는 온도 자체가 달랐다. 분향소를 나오자마자 내 눈에는 눈물방울이 맺혔다.
안산이 가까워서기도 하지만 이후에도 나는 세월호 관련된 일로 안산을 가끔 들렀다. 4.16 기억교실을 찾아갔고 관련 서적을 읽고 안산에서 열리는 행사들도 틈나는 대로 참석했다.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과연 세월호가 그동안 일어났던 여러 참사들보다 더 특별한 것이었을까. 사망자 숫자? 아이들이 많이 죽어서? 사고의 과정이 석연찮아서? 사고 후 대처를 잘못해서? 따지자면 모든 게 이유가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도 뭐라 설명할수 없는 이유로 종종 세월호를 떠올렸다. 그 속에는 어떤 정치적 의도나 사명 같은 건 들어있지 않았고 그냥 감정이 제멋대로 떠밀었던 것 같다.
오늘로서 10년이 지났다. 10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이 잊혀지고 잊혀져야 할 시간이다. 영원히 기억되어야 만 하는 건 세상에 없다. 대구지하철 화재, 삼풍백화점 붕괴, 서해 페리호 침몰....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거의 지워진 참사들이다. 지겹다, 그만하라는 말조차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세월호 역시 과거의 시간 속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억하는 사람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만화 원피스에 나왔던 닥터 히루루크의 대사가 생각난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냐? 그건 사람들에게 잊혀졌을때다” 참사를 당사자의 몫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기억해주는 사회는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