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 엠블렘’ 시리즈는 턴제 RPG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게임 시간이 부족해 포장지만 뜯고 못해본 게임이 수두룩함에도 최근작 풍화설월과 인게이지는 각각 100시간 이상의 플레이를 했다. 몇 차례 엔딩을 봤음에도 여전히 갈증이 멈추지 않는다. 이런 미친 게임이 다 있다니. 표면적으로는 서로 한 번씩 공격과 방어를 주고받는 단순한 전투방식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다채로운 전략성 이 반복의 지루함을 지워내고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이 지닌 또 하나의 매력적인 차별요소가 있는데 그건 바로 모드 선택이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 유저는 두 가지 모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일단 결정하고 나면 중간에 변경할 수 없다.
1. 캐주얼 : 잃은 동료는 전투 종료 후 부활하는 모드
2. 클래식 : 잃은 동료는 돌아오지 않는 모드
보통의 RPG 게임이 취하고 있는 방식은 캐주얼 모드이다. 전투 도중 동료가 죽거나 퇴각하더라도 스테이지를 성공적으로 종료하게 되면 이들은 아무 일 없이 되살아나 스토리를 이어간다. 캐주얼 모드로 플레이를 할 때 동료의 생사여부는 큰 고려대상이 아니다. 어차피 잃어버린 동료는 전투가 끝난 후 자동 부활하기 때문에 스테이지 종료까지 주인공 한 명만 살아남으면 성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인 목표 달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클래식 모드는 다르다. 동료를 죽여선 안 된다는 압박이 걸리는 순간 게임에 임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진다. 클래식 모드에서는 동료 한명 한명의 중요성이 절실하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강한 적들과 맞닥뜨리는데 동료의 숫자가 적으면 플레이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때문에 첫 스테이지부터 전체 파티의 생존을 위해 심사숙고하며 플레이를 이어나간다. 두 모드 다 스토리 진행은 동일하지만 스테이지 클리어에만 목적을 두는 캐주얼 모드와 달리 한 명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온갖 전략을 짜내가며 힘들게 플레이를 해야 하는 클래식 모드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나의 노력으로 모두를 살려냈다는 안도감은 클래식 모드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희열이고 바로 그 점이 내가 이 게임에 더 몰입하게 만든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현생은 캐주얼이 아닌 클래식이다. 각자의 삶은 유일하며 죽고 나면 부활하지 않는다. 지나온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한번 저질러진 일은 회복 불가 판정을 받을 때도 많다. 그 유한성 때문에 매 순간을 소중히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종종 클래식과 멀어지고 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이기심과 안도감. 클래식의 세계에서는 각 유닛이 전체의 생존을 위해 서로를 돌보고 배려하는 마음을 아끼지 않는다. 몸이 튼튼한 전사는 앞장서서 적의 공격을 받아내고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궁수와 마법사는 지원사격을 하며 힐러는 동료들이 죽지 않도록 회복을 돕는다. 누구도 당신이 먼저 희생하라며 등 떠밀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나는 플레이를 하는 동안 이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음성이 들릴 것 같았다.
“ 아무도 죽지 마.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 다 같이 힘을 합쳐 이곳에서 살아남자고! ”
바흐와 베토벤의 곡만 아름다운 클래식이 아니다. 이런 마음가짐 역시 클래식의 아름다움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