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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Oct 11. 2024

클로저-유전 VS 조경 (3)

에이스 승완의 이탈은 치명적이지만 조경의 투수들 역시 상태가 좋지 않은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레드 샤크는 확실한 에이스 없이 여러 명이 돌려막기를 하는 형국이었고 유전은 4회말 다시 재역전에 성공했다. 투수와 달리 양쪽의 타자들은 한 바퀴 두 바퀴를 돌수록 감각이 적응되면서 타구 질이 좋아졌다. 연속 삼진을 당하던 민재도 첫 안타 맛을 봤고 성훈은 거의 매 타석 볼넷으로 출루했다. 서로의 패가 다 드러난 이상 이제부터 경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물량 공세 난타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5회초 조경은 약속이나 한 듯 다시 재역전에 성공하며 유전의 마운드를 흠씬 두들겼다. 마침내 조경이 20점을 넘기며 점수 차는 크게 벌어졌다. 아무리 조경의 투수진이 시원찮아도 이 정도 점수 차면 만회하기 쉽지 않았다. 5회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는 순간 점수는 21:14. 유전은 7점 차로 뒤진 채 5회말 공격에 들어갔다.

      

5회 말이 시작될 때 시간은 이미 3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남아있는 시간을 계산해 볼 때 이 경기는 길어야 6회가 마지막이다. 나는 더 이상 출전을 미룰 여유가 없었고 대타로 출전하기 위해 몸을 풀었다. 조경 쪽 스탠드를 보니 락희는 딱히 경기를 집중해서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조경이 점수를 낼 때 주변 분위기에 휩쓸러 가볍게 박수를 치긴 했지만 곧바로 같이 온 친구들이랑 깔깔거리며 딴짓을 했다. 유전 역시 조경 투수들을 상대로 활발한 공격으로 추격의 고삐를 당겼다. 연속 안타와 실책을 묶어 4점을 뽑아내며 점수 차는 3점으로 좁혀졌다. 계속되는 2사 2,3루 찬스. 이제 때가 왔다고 판단한 나는 대타를 신청했다. 어차피 나갈 거라는 걸 예고했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고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첫 타석에 들어섰다. 

    

락희의 모습은 여전했고 특히 유전이 공격할 때는 거의 경기를 보지 않고 수다만 떨었다. 그녀는 자기 팀이 이기고 지는 것에 아무 관심이 없는 걸까. 나를 봐 락희야. 제발, 나를 봐달라고. 중요한 찬스에서의 대타보다 락희의 무신경함이 더 신경 쓰이고 화가 났다. 초구가 바깥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 배트를 휘둘렀지만 헛스윙 원스트라이크. 너무 긴장한 탓에 헛스윙을 하긴 했지만 야구 연습장의 공처럼 빠르지도 않고 무브먼트도 없었다. 비슷한 코스로 다시 들어온다면 충분히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제구력이 흔들린 투수는 연속 세 번 볼을 던지며 볼카운트는 원스트라이크 쓰리볼. 이제 나는 배트를 휘두를지 말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가만히 기다리면 볼넷으로 걸어 나갈 확률이 높지만 이건 락희에게 전혀 임팩트를 줄 수가 없다. 하지만 배트를 휘둘렀을 때 삼진이나 아웃으로 죽을 확률과 안타를 칠 확률을 비교해 볼 때 후자가 높다고 자신할 수도 없었다. 잠깐의 고민 뒤 결정을 내리고 배트 그립을 힘껏 잡았다.

      

투수의 손에서 공이 벗어나자 공은 바깥쪽으로 흘렀다. 가만히 있으면 볼넷이 확정적이지만 나는 오른손으로 배트를 내려 윗둥에 공을 맞췄다. 기습번트. 정확히 맞지는 않았지만 운 좋게 파울이 되지 않고 공은 3루수 쪽으로 굴러갔다. 3루수가 한번 더듬거리며 1루에 송구하는 바람에 결과는 세이프. 그 사이 3루 주자가 홈인하며 이제 점수차는 2점. 유전과 스탠드에서 박수 소리가 나왔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번트를 댄 이유는 설령 실패하더라도 한 번의 스트라이크 기회가 더 남아있고 안타보다는 번트의 성공확률이 더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작전은 성공했고 나는 첫 타점을 올렸다. 출루하자마자 락희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이 광경을 봤는지 못 봤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봤다면 실망했을까? 고작 번트라니. 차라리 삼진을 당하더라도 자신 있게 휘두르는 게 나았을까. 유전은 이후 1점을 더 추가해 21:20 1점차로 턱밑까지 압박해 들어갔다. 

     

마침내 약속의 6회. 시간은 4시에 임박해 이대로 조경의 1점 차 승리로 끝내도 될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4시 수업에 늦더라도 6회까지 끝내기로 합의를 보았다. 락희를 비롯해 스탠드에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수업 준비를 위해 자리를 뜨는 동안 조경은 6회 초 마지막 맹공을 퍼부었다. 6점을 더 추가하면서 스코어는 27:21. 유전이 승리하려면 다음 공격에서 7점을 뽑아야만 했다. 관중이 모두 떠난 자리에서 유전의 6회 말 공격이 시작되었다. 다들 수업을 의식해서인지 스윙에서 조급함이 느껴졌다. 볼넷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무리하게 휘두르다 범타가 되었다. 결국 3점을 추가하는 데 그치며 최종 스코어는 27:23 조경의 4점 차 승리. 더블 헤릭스의 첫 공식 경기는 패배, 내 기록은 1타수 1안타 1타점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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