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아픔이 채 가시기 전에 캠퍼스는 축제의 시간이 찾아왔다. 재미없기로 소문난 학교지만 그 속에서도 학생들은 나름의 즐길 거리를 찾아 어슬렁거렸다. 평소의 우리라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따로 놀았겠지만 더블 헤릭스를 계기로 과 동기들이랑 한 발짝 가까워졌다. 특히 이날은 뭐에 홀린 듯 아웃사이더 근성을 버리고 동기들과 잔디밭에 모여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놀았다. 한 달 남짓 함께 훈련하고 경기했던 일종의 연대감이 작동했던 것 같다. 술기운이 잔디밭에 퍼져나가자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술자리에서 노래 부르는 게 일상적인, 소위 18번이라 칭하는 애창곡 한두 개는 다들 외우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나는 지목되자마자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뭘 부를까. 김원준의‘모두 잠든 후에’, 신승훈의‘미소 곳에 비친 그대’, 공일오비의‘아주 오래된 연인들’이 스쳐갔지만 최종 선택은 김종서의‘겨울비’였다. 이 곡은 한 번도 노래방에서 불러 본 적 없지만 시나위 앨범 때부터 무척 좋아했던 곡이라 집에서 몇 번 연습한 적이 있었다. “겨울비처럼 슬픈 노래를 이 순간 부를까~ 사랑의 행복한 순간들 이제 다시 오질 않는가! 내게 떠나간 멀리 떠나간 사랑의 여인아~” 나름 노래를 좀 하는 편이라 스스로 생각해도 만족스럽게 불렀다. 박수 소리가 쏟아졌는데 노래에 대한 찬사보다 늘 찌그러져 있던 애가 저렇게 거리낌 없이 불렀다는 자체에 놀란 분위기였다. 졸업 전까지 나는 겨울비를 사람들 앞에서 몇 번 더 불렀는데 의도치 않게 겨울비는 내 18번이 되었다.
이날 오전 조경과와의 공통교양 수업이 끝난 뒤 락희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 안타 치고 싶었는데 컨디션이 안 좋았어. 니네 과가 이기니까 좋아?
- 아 맞다. 너도 나왔지? 성훈이랑 민재도 봤어.
- 번트를 댈까 말까 고민했는데 일단 안전하게 점수를 더 내야....아니 사실 그게....
순간 말이 끊기며 문장은 토막 났다. 락희의 얼굴을 보니 암만 봐도 내가 번트를 댔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잊어버린 것 같았다. 아니, 알더라도 그게 뭔 대수이며 야구에 대한 얘기는 딱히 하고 싶지 않다는 지루한 표정이 역력했다. 설령 그날 내가 홈런을 쳤더라도 락희의 호감지수를 높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니 지난 연습의 시간들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어떤 노력의 행위가 상대에게 아무런 울림도 전해지지 못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락희 역시 그냥 그런 짝사랑 리스트의 한 페이지로 남을 거란 거겠지. 같이 영화 볼래? 밥 먹으러 가자 같은 흔한 말들이 왜 그리 버거웠을까. 거절의 두려움이 그렇게까지 큰 것이었나. 노래를 마친 뒤 동기들이 따라주는 술을 모조리 비웠다. 주량이 센 편이 아닌데도 이상하리만치 취하지 않고 정신이 선명해졌다. 늦은 밤 불어오는 찬바람 때문이라 믿고 싶었다.
민재 역시 술이 들어가자 평소와 다른 반전을 보여줬다. 그는 서태지와 아이들의‘너와 함께 한 시간 속에서’를 불렀다. 잘한다고 보기엔 어려웠지만 긴 랩 가사를 안 틀리고 다 외운 건 칭찬 할만했다. 거기에 더해 춤까지 췄는데 빼빼 마른 목각인형 같은 민재의 뻣뻣한 몸짓이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안쓰러웠다. 사실 그도 나처럼 연애가 고팠고 적잖은 문제가 있었다.
- 은경이는 아니야. 학회지 만들고 싶어서 간 거지.
본인은 여전히 부인했지만 그가 과 동기 은경이를 좋아하고 있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관심도 없던 편집부에 갑자기 가입한 건 은경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어서였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나와 락희만큼이나 희박했다. 민재의 열악한 외적 조건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둘은 성격이나 취향 같은 게 딱 봐도 합이 맞지 않았다. 우리 둘의 연애사업은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개점휴업이 된 것이다. 한편 다들 노래 한 자락씩 뽑아내는 와중에도 성훈은 한사코 거절했다. 그는 노래방에 가도 노래를 안 불렀고 억지로 마이크를 들이대면 성의 없이 조금 부르다 다시 마이크를 넘기곤 했다. 체질적으로 노래 부르는 걸 싫어했고 음치까진 아니지만 못 부르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긴 여자한테 인기 많고 자가용까지 끌고 다니는 놈이 노래까지 잘하면 재수 없지. 가무 정도는 우리한테 양보하는 게 형평성에 맞지 않을까.
주변이 허허벌판처럼 뚫려있어 율베리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만큼 이곳의 추위는 빨리 찾아왔다. 차가워진 날씨와 지난 패배의 후유증 탓에 단체 훈련은 참석율도 저조하고 긴장감도 없었다. 학기가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정식 경기를 잡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마땅한 상대를 찾을 수 없어 결국 무산되었다. 의욕이 사그라진 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결정적 계기는 이번 학기를 끝으로 성훈의 미국 유학이 확정됐기 때문이었다. 그전에도 유학을 갈지 모른다는 말은 들었지만 진짜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더블 헤릭스도 그렇지만 이제 친한 친구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종종 잘난 척 해대는 소리를 지껄이긴 해도 대학에서 민재와 함께 유이하게 사귄 친구였다. 락희 때문에 심난한데 성훈마저 떠난다고 하니 모든 일에 의욕을 잃었다. 성훈이 없는 더블 헤릭스는 상상할 수 없었다. 세 명이 힘을 합쳐 만들었지만 실상 그의 지분은 나머지 둘을 합쳐도 부족할 정도로 컸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비유하자면 성훈이 서태지고 민재와 내가 이주노 양현석인 셈이다. 서태지 없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존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