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2년 간 학교라는 교도소에 있었다

공립학교 한번 안 보낸 7년 찐 홈스쿨러 엄마가 전하는 홈스쿨링 이야기

by 따뜻한 스피커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최근 대학입시를 앞둔 둘째와 종종 즐겨보곤한다. 머리도 식히고 상식도 늘릴 겸.


특히 아들과 나는 '알쓸신잡 2'를 통해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팬이 되었다.

그는 훈훈한 외모와 거침없는 발언 덕분에 '건축계의 아이돌' '건축계의 이국종'이라고 불린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건축과 도시 등에 대한 그의 아이디어는 더 빛이 난다.

요즘 여러 미디어에서 그를 자주 볼 수 있어서 기쁘다.


1년 전 세바시 <CBS의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들은 그의 강연를 울버렸다.

나조차 잊고있던 과거의 나에게 깊은 지지를 보내주는 느낌이었다!그는 폭포수처럼 강렬하게 말을 쏟아냈다.


"우리나라가 위기인 이유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있다. 다른 것인데 틀리다고 한다. 10명이 같이 가서 다 같이 짜장면을 시키는데 한 사람이 볶음밥을 시키면 "아 볶음밥을 좋아하는구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유별나구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청소년들은 회색 아니면 검은색 옷만 입으려고 한다. 어쩌다 밝은 색깔의 옷이라도 입으면 관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다 발전했지만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나를 거치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는 유일한 그곳을 12년간 거친다. 그것은 바로 전국의 공립학교다.

"우리나라에서 담장에 둘러싸인 공간은 학교와 교도소뿐이다.
12년 간 그렇게 수감 상태에 있다가 졸업을 하면 '너만의 길을 가라'라고 한다. 어쩌란 말인가.
3학년 4반을 다니다가 똑같은 대기업에 다니고 싶어 하다가 304호 아파트에 살다 칸칸이 납골당에 묻힌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획일화된 전체주의를 좋아하는 것의 주범은 바로 학교 건물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12년 간 '학교'라는 교도소에 있었다.
학교는 지식만 가르치고 지혜는 가르치지 못하는 공간이다."

<홍익대학교 건축과 유현준 교수의 세바시 강연 중에서>



이 부분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내가 울었던 뜻밖의 포인트는 '볶음밥' 그리고 '유별나구나' 라는 단어였다.



첫째가 홈스쿨을 시작했을때는 초2였다.

우리 아이가 얼마나 유별나고 예민하며 관종인지를 아는데는 얼마걸리지 않았다.


종종 친구들을 만나 놀거나 활동을 할때 첫째의 기질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먹고 싶은 것이 있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일단 눈치를 보지 않았다. 당당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그러다 보니 엄마로서 마음이 졸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눈치가 없다고 혼내기도 했다. 아이가 이기적인 사람이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더 엄하게 아이를 대하고 훈육했다.


-당사자인 아들은 지금 와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을 지나치게 엄격히 훈련을 시켜서 힘들기도 했다고. 하지만 비교나 편견 없이 부모가 대해준 것에 대해 감사해했다. 자신과 대화를 많이 나누며 깊은 관심을 가져준 것 대해서도. 다행이다. 첫째는 지금 22세이다.-


외식을 가도 다른 가족과는 꼭 다른 메뉴를 시켰다. 심지어 그것은 거의 비쌌다. 눈치도 없었고 어딜 가나 유별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아이를 크게 혼낸 눈물로 밤을 지새운 적도 많았다.


이런 아이를 홈스쿨링 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학교에 보냈었다면 어땠을까?

선생님들과 다른 학부모들의 눈까지 의해야하므로 더 힘들었을것이라 충분히 짐작할수있다.

아이의 본심 데없이 끝없이 의심당하고

난 늘 아이를 다그치고 잡았을 것이다.


그렇다. 첫째에게 홈스쿨링은 아주 잘 어울리는 옷과 같았다. 지금도 이 아이는 어디서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거나 창의적인 시도를 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획일화된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생각과 유연함 그리고 도전정신을 장착하게 된 것은, 홈스쿨링이 첫째에게 준 선물이라고 믿는다. 첫째는 지금 다른 친구들이나 후배들의 고민을 상담해주고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아이로 통한단다. 본인의 섬세하고 유별난 성격 덕분에 길러진 능력이다.






정확히 몇 절인 지 까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성경속 잠언에 "사람이 선택하기 전에는 이리저리 재지만 택하고 나면 맞다 맞다 한다"는 말씀처럼 지금 내 모습이 꼭 그렇게 느껴지긴 한다. 어쩌겠는가 우리는 선택했고 우리는 즐겨야 했고 우리는 살아남았다. 그것도 해피앤딩으로.


'초등 6년이 자녀교육의 전부다'를 쓴 베테랑 초등학교 교사이며 작가인 전위성 선생님도 초등시절의 아이의 학습 효능감과 자존감에 대해서 말한다. 학교가 아니라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강조한다. 상상 이상의 에너지가 드는 일이. 하지만 어차피 아이의 초등시절 내가 가장 잘하고 싶었던 일은 '엄마의 일'이었고 이왕이면 전문적으로 하고 싶었기에 홈스쿨링은 내게도 잘 맞았다.


고단하고 지칠 때가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아이들이 우리 부부의 어린 시절과는 다른 행복하고 주도적인 인격으로 자랄 것을 상상하면서 하루하루를 채워나갔다.




나중에 초등 홈스쿨링을 마치고 대안학교에 갔을 때도 첫째는 역시 '유별나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다. 실은 '나댄다'라는 말이었다.

아이는 그 말을 싫어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은따'를 당하고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져 학교를 가고싶지않다고 말한적도 있었다.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는 대안학교도 다를 것은 없었다.


우리 가족은 당시에는 더 이상 홈스쿨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때도 온 가족이 똘똘 뭉쳐 '홈스쿨의 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여기서 홈스쿨의 정신을 간단히 말하자면, 먼저 가족 구성원에게 문제가 닥치면 다 함께 짐을 나누어진다. 청소년아들들이기 때문에 아빠가 멘토링을 맡는다. 엄마는 말보다는 가능한 입을 다물고 치킨과 맛있는 간식 등을 수시로 준비한다. 이렇게 밝고 평범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이 문제가 그렇게 큰 것만은 아님을, 삶의 여정의 한조각이 지나가고 있을 뿐임을 이미지화한다. 그리고 가족이 한편이 되어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보여준다.(아이가 힘들어하는 와중에 엄마가 배로 힘들어하며 몸져눕거나 아이와 싸움같은 것을 하지않았다.더이상.)


이 문제의 주체는 아이이기 때문에 최대한 아이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한다. 아이에게 수정할 행동이 있을 때 가족이 조언할 수 있고 아이 자신도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실천한다.

끝까지 아이의 본심을 의심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등이다.


쉽게 쉽게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두 아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많은 시행착오와 눈물 끝에 정리된 프로세스다.


둘째는 7세에 얼결에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첫째가 홈스쿨링을 하고 싶다고 스스로 결정할때까지 거의 반년을 기다렸었다. 둘째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형을 따라 시작했다. 아직도 종종 미안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형과는 완전 다른 또 하나의 우주 동생의 홈스쿨링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다음에 계속됩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
오늘이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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