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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스피커 Dec 13. 2020

슬퍼하지 마세요 하얀 첫눈이 온다구요

응답하라 나의 소중한 일상에

슬퍼하지 마세요 하얀 첫눈이 온다고요
그때 옛말은 아득하게 지워지고 없겠지요


일요일 아침 온기가 도는 주방에 손이 바쁜 남편의 실루엣이 보인다.

오늘은 웬일로 뉴스가 아니고 음악까지 스트리밍 해놓고 커피콩을 드르륵드르륵 갈고 있다.

우리의 작은 주방에 커피 향이 아까부터 그득하다. 기분이 좋다.


"자기야 눈이 왔어 밤새 첫눈이 왔네. 자기 이 노래 알지? 이정석의 '첫눈이 온다고요'!

이 가수 이름이 자기 첫사랑 이름과 똑같아서

내가 잊을 수가 없지.

커피 내려줄테니 첫눈 보면서 첫사랑 떠올리며

한 잔 하시죠 하하하" 


"그럴까나 호호호"


5년 전만 해도 저런 말을 들으면 나는 바로 뾰족해져서는 왜 꼭 첫눈만 오면 이 노래를 틀어대고 내 (신비로운-물론 단어는 속으로 한 말이다) 첫사랑 이름을 들먹이는 짓을 계속하냐며 짜증을 냈었다.


"아 자기 진짜 성격 이상하네 또 내 반응 보려고 그러는 거지" 괜히 약이 오른 나는 커피는커녕 아침밥도 안 먹고 싸웠던 적도 있다.


올해 결혼 21년 차 40대 후반의 우리 부부의 여유롭고 허세가 가득한 대화 좀 보소.


커피 향에 좋아졌던 기분은 다행히 아직 유효하다.


정확히 말하면 '이정석'이라는 이름은 나의 첫사랑의 이름이 아니고 짝사랑했던 남자의 이름이었다.    

남편과 연애시절 당시 남편이 우연히(?!) 나의 다이어리의 메모를 보고 유도신문을 던졌는데

당시 나는 그 질문에 여지없이 걸려들어

 불어버렸다.

첫 사랑도 아니고 짝사랑이었는데 뭐가 그리 죄스러워서 그리했을까.아이고 20대의 나여


그 후 남편은 나의 약점이라도 잡은 듯 지금까지 25년간 놀리고 있다.  




'첫눈이 온다'는 1986년 대학가요제 금상곡으로 아직도 첫눈이 오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떠올린다는 노래다.


https://www.youtube.com/watch?v=1dp3uxXit6k 

<첫눈이 온다구요 1986대학가요제금상수상 영상. 선이 가늘고 미소년같은 외모의 이정석을 만나볼수있다. 이곡은 응답하라1988의 삽입곡으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첫사랑 때문도 짝사랑 때문도 아니고

이 노래는 그냥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비음이 매력적으로 섞인 고운 남자목소리위로

그리 모든 것들과 이름들이 아련히 지나간다.


오늘도 남편의 '나의 첫사랑타령'에 농담따먹기로 세게 받아치느라 제대로 못들은 노래를, 혼자있을때 세 번이나 연달아 들었다. 

눈물이 주르르흘렀다.


오늘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결국 천명을 넘어선 날이다.

이 노래의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 닿아 아팠다.


아스라이 사라진 기억들 너무도 그리워 너무도 그리워
옛날 옛날 포근한 추억이 고드름 녹이듯 눈시울 적시네
슬퍼하지 말아요 하얀 첫눈이 온다고요
그리운 사람 올 것 같아 문을 열고 내다보네


먹먹해졌다.

첫 눈처럼 눈부시지만 시린마음으로

소중하고 그리운 우리의 일상에 경의를 표한다.


즘 마음 괜찮아?하고 안부전화를 꼭 돌려야할 사람을 떠올려본다.


집-회사-집-회사-집에만 있으니 월세가 안아깝다고..허허 웃는 혼자사는 그분에게도 전화를 해봐야겠다.


"요즘 어떠세요? (슬퍼하지마세요 첫눈이 온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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