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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스피커 Jan 12. 2021

1월엔 혼세미나를 해요

제대로 육퇴 나를 위한 도망, 조금의 용기와 번거로움만 극복할 수 있다면

매년 10년 넘게 하는 혼세미나 나의 1년이 달려있다.


"나 아무래도 다녀와야겠어"

"그래 갔다 와 올해는 왜 간다는 말이 안 나오나 했네"

'혼세미나'를 간다는 나의 말에 남편은 익숙한 듯 응수한다.


혼세미나는 그냥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나 홀로 힐링타임도 나 홀로 나들이도, 조금은 긴 이 외출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혼세미나는 노트북과 책들이 필수다.

노트북은 1년간의 나의 미션과 비전을 정리하는 도구이고 BGM을 책임지며, 책들은 그동안 찔끔찔끔 완독을 하지 못하고 있던 총체물들이다.

그리고 그동안 하기 싫고 집중이 안돼서 미루어 두던 강의 개발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야심 찬 혼세미나 1박이 시작되었다.

나는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다.

1박 2일에 저걸 다 하고 갈 수는 없다는 것을.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돌보기 전에 

내가 나를 돌보는 것으로 1년을 시작하는 이 충만한 느낌이고   

그로 인해서 얻어지는 나의 내면 질서의 안정과 보상만으로도 실은 부족하지않다.


신년에 하는 혼세미나에서는 나의 삶과 전문영역에 있어서 why점검하고 정리하는것이 우선적인 목표이다.이게 잡히면 무엇을 하지말아야할지가 저절로 정해진다. 목마를때 냉수를 들이킨것처럼 속이 시원해진다.

How는 어차피 계속 수정되니 카테고리만 잡고 가도 뿌듯할 것이다.   


이번 혼세미나의 주둔지 오라카이 청계산 호텔 객실


혼세미나의 필수준비물 노트북과 책들 그리고 언박싱하려고 가져온 선물받은 책 '우리는 언제나 다시만나'


아무런 방해도 없이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이것은 일하는 엄마든 전업주부의 엄마든 모든 엄마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혼세미나를 떠나는중이라는 내 말에

단톡 방의 55명의 엄마들의 글에 동공이 커지고 요동치는 눈들이 였다. 


"부럽다 응원한다 즐기다 와라 내년엔 나도 버킷리스트로 넣어야겠다"

조금 미안해졌지만 1년 중 한번 남편과 자녀들의 양해가 수반되면 불가능할 것은 하나도 없다는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나오기 전까지 밥과 국을 새로 해서 1인분씩 따로 담아 냉동실에 얼려두고 안 치우던 집도 지나치게 말끔히 치 놓은 후

1박이라도 할지라도 밖에서 꽉 찬 이틀을 보낼 요량으로 모든것에 아쉬움이 없을 정도로

내 짐을 싸느라 헐레벌떡 뛰어다녔다. 

아고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잠깐 회의가 든 순간도 있었지만 잠시 뒤면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을 호텔방에서, 아름다운 음악과 차 한잔을 들고 우아하게 혼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없던 힘이  솟는다.


친정도 나의 쉬는 공간이 되지는 못한다.

결국 돈을 좀 써야 한다. 꼭 비싼 호텔일 필요는 없다. 오션뷰나 마운틴뷰를 고려할 필요도 없다. 그저 조금 깨끗한 공간이면 된다.

지금 내가 와있는 오라카이 호텔 같은 곳은 평일에 1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일박을 할 수가 있고

한적하고 혼자있기에 조건이 참 좋다. 이곳엔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아들들이 초등 저학년 한창 홈스쿨링을 하던 시절부터 나는 이렇게 1년에 두 번 지금까지

십 년 넘게 짐을 싸서 집을 떠났다. 홈스쿨링이라는 것이 하루 종일 아이들이 집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엄마의 에너지는 쉽게 고갈된다. 딱 지금 코로나 시대의 엄마들을 상상하면 된다. 그렇게 7년을 살았다. 일상은 힘들게 살고 휴식은 제대로 보내자는 것이 내 인생의 지론이라서 나는 쉬기 위해서 떠났고 쉬다가 지겨우면 우리 집 홈스쿨링의 1년의 커리큘럼을 짰다.


십 년 전 1월 새벽 고속버스터미널에 가서 가평 가는 차를 타고 두 시간 반이 걸려 필그림하우스라는 순례자의 집이라는 곳에 간적이 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2박 3일의 혼세미나였다.


누구나 철저히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연 1회 또는 2회 나 혼자 집을 떠나는 프로젝트를 권한다.  이번에는 망설이다가 늦어지긴했지만 그래도 용기를 냈다. 잘했다.




호텔에 도착했는데 체크인까지 여유가있어서 레스토랑에 앉아 나의 늦은 브런치를 주문했다.

음식이 테이블에 놓이자마자 마술이 일어났다.


커다란 창밖에 눈이 내리기시작했다.

영화처럼


오랜 버틴것들은 친구가 된다.

내겐 외로움이 그렇다.

'혼세미나'를 빌미로 나는 이 외로움을 즐길 시간을 나에게 내어주는 중이다.


그리고 나의 소중한 1년을 좌우하는 혼세미나의 의식 후회없이 누리고 갈생각이다.



늦은 브런치 그리고 눈...잠시 뒤부터는 아예 펄펄 쏟아져내렸다


익숙한 공간에선 익숙한 아이디어가 나오더군요.
그런데 그 익숙함을 아주 조금만 바꿔도,우리의 머리는 귀신같이
그 차이를 알아채고,그동안 쓰지 않던 생각의 근육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낙차를 만들어보는거죠.
매일 똑같은 상황에 놓인 나를 낯선 무언가와 일부러 충돌시켜보는 겁니다. 수력발전소를 돌리기 위해,
일부러 물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것처럼 말이죠.

유병욱의 -생각의 기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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