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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스피커 Feb 15. 2021

몸에게 물어본 적 있나요?

내 몸아 좀 어색하긴 하지만, 사귈래?

"하아...."


"아 지금 어느 부분에서 반응을 하셨는데 그게 뭐였을까요?"


"아.. 그게.. 제 몸에게 물어본 적이 있냐고 물으신 거요. 그 질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요. 대답은 아니요. 예요.

근데요 코치님. 제 마음 지금 좀 출렁거리네요.

홈트나 걷기 등의 운동을 하면서 이거라도 해야지! 그렇지 해야 돼! 그래야 건강해지고 살이 빠져!라고 혼잣말을 하곤 했지만 말이에요.

내 몸에게 물어본 적이 있냐?라는 말은 좀 다르게 다가오네요. 몸에게 대체 무엇을 물어보나요?"


"다그치는 말, 혼내는 말 말고 

오늘 무슨 운동이 하고 싶어?

어떻게 하고 싶어?

라고 묻는 것을 말씀드려요.

그리고 운동하면서나 운동을 다 한 후에 내 몸을 향해 대견하다고 기특하다고 칭찬을 하고 계신지 그것도 포함해서요"


이게 무슨 손발 어색해지는 소리지?

잠시 생각하는 사이 돌발적인 일이 일어났다. 

때때로 무방비상태에서 맞닥뜨리는 어떤 종류의 질문들은 충동적인 에너지로 변환되어 입이 터지게 한다. 아니 속마음을 털어놓게 만든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질문을 잘하는 게 고수다!

나는 거의 질문을 '하는' 역할을 맡곤 했는데 오늘은 질문을 '받고' 있다.

아 좋다. 점점 빠져든다.

이래서 나이가 들수록 끊임없이 나를 학생의 자리에 앉게 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가장 젊은 나를 만나고 성장하는 나를 만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목소리 넘어의 젊은 운동 심리학자와의 통화 중에 나는 울음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시키지도 않은 고백을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런 것을 물어본 적도 생각한 적도 없어요. 운동은 그저 저의 과업이었죠. 가장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것이어서 즐긴 기억이 없고요. 그리고 저는 몸에 대한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에요. 키가 작고 하체가 뚱뚱하고 소위 스타일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늘 제 몸을 싫어했던 것 같아요. 저는 거울을 보면서 운동하지 않아요. 내 몸을 보고 싶지 않거든요."


그리고 TMI가 시작되었다.


"두 아들을 낳은 후 30대가 넘어서 시작된 제 내면의 여정은 정말 치열했답니다. 내면 아이를 찾아 만나고 안아주고 위로해주 보내주면서, 현재의 나와의 간극을 줄이고 균형을 잡기 위한 여정. 전쟁 같기도 했고 나름

인생을 자포자기하지 않고 살아내는 시간을 찰지게 보냈지요. 그런데 이요? 글쎄요.

나의 몸까지 그렇게 성찰하고 돌볼 여유는 없었던 것 같네요"


아 어이없어. 난 지금 왜 울고 있는 거지? 스스로에게 물을 새도 없이 이미 내 마음에 차오른 눈물의 수문은

열려있었다. 그리고 이미 출발했다는 신호가 들려왔다. 이번엔 '몸'의 내면 아이를 만나기 위한 항해를.



그렇게 나는 조금 더 울었던 것 같고 진정이 된 후 이야기를 이어갔다.


"늘 열정이 넘치는 강사로서 외부에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반드시 매운 순대곱창볶음을 사고 떢튀순 세트와 과자 그리고 탄산음료 등을 혼자 먹지도 못할 만큼 사들고 들어왔었어요. 오늘을 남김없이 불태운 기념으로 화려한(?) 자축의 시간을 갖으며 나의 식탐을 채워주는 것으로 보상을 했지요. 물론 그런 보상도 필요할 때가 있긴 했다고 생각하지만 1년 2년 3년의 시간이 흐르자 제 몸이 여기저기 망가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붓고 빠지고를 반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면역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이 느껴지는 거예요. 한번 기침감기에 걸리면 일 년에 반인 6개월 동안 기침을 했었죠. 결국 폐렴 검사까지 하게 되지만 아니라고 하고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3년 전부터 아침식사로 생식가루를 두유에 타서 먹는(두 끼는 일반 식사)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고요, 그 뒤 제 몸이  정도로 컨디션이 뭔가 좋아지 시작했어요."


잠시 생식 예찬을 30초만 하자. 간증이 싫으신 분은 건너뛰라!

그랬다. 우리나라에서 생식으로 가장 역사가 깊다는 이 회사의 생명철학과 재료에 대한 자부심이 마음에 쏙 들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나의 지인이 증후가 좋지 않다는 난소암에 걸리고 치료과정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었는데 항암치료와 더불어 생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에 비해서 빠른 호전을 보인 것도 내게 큰 자극제가 되었다. (늘 열정과 빌빌 거림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나에게 현대인의 3명 중 1명이 암이라는 통계는 말 그대로 위협이었고, 실제로 친한 지인들 6명 모임 중에 2명이 암이었던 현실이 내 눈앞에 실제로 펼쳐졌던 것은 강력한 동기부여였다.)

3년 전 한 끼를 생식으로 바꾸어 먹은 후로 달라진 것은 신기하게도 중독처럼 먹던 과자 빵 떡볶이 등의 밀가루 음식을 자연스레 멀리하게 된 것. 이상하게 맛이 별로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아직도 여전히 기분상 찾고 먹을 때도 있는데 예전처럼 순식간에 한 봉지를 다 비우거나 그런 일은 드물었다. 그리고 언제가 들은 한 전문의의 말을 나는 믿기로 했다. 우리의 '뇌와 몸'은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함께 받아들였을 때 먼저 좋은 것을 기억하고 저장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 그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 내 몸과 마음의 관리에 영리하겠다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었다.


생식처럼 내 몸에 좋은 음식을 매일 아침 먼저 공급해주면서 이 좋은 음식들이 내 몸의 터줏대감이 되게 하고, 이후 내 몸에 들어오는 해로운 음식들 힘을 못쓰고 밀려 배출되게 만드는 몸의 시스템을 만들자. 이런 나름의 선택적 생각이었는데 나는 이 이론으로 상당히 덕을 보았다.


효과가 컸기 때문이다. 1일 '아침 생식'을 한 이후로 해마다

두세 번씩 하잔병치레가 줄었고 부실하던 내 몸의 컨디션이 올라갔다. 먹는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나쁜 것을 실컷 먹고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것보다 한 끼 식사를 그나마 완전 영양소로 챙기며 내 몸에 최선을 다했다는 안도감이 불안감이나 스트레스를 줄여주었다. 칼로리도 적어서 체중조절이 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요즘도 하루 한 끼는 생식으로 할 것을 권한다.

 


"퇴근할 때 매운 곱창볶음 1인분만 포장해와요.

아 당면 꼭 추가하고!"


..............


그러나 어이없게 몹쓸 코로나가 다시 소환한 나의 나쁜 식습관. 집에서 일하고 먹고 지내다 보니 내 혀를 만족시키는 자극적인 것들과 야식을 찾 되었 밀가루 나라의 제왕들과 썸을 탔으며 급기야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집에서 늘 반복되는 일상이나 먹는 것에 대한 지루함 커져서 아침에도 생식을 먹지 않고 다른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확 찐자'라는 유행어의 대열에 자연스레 합류했다.

앉아서 노트북과 싸우는 근육만 키우는 중이며 요즘따라 '아 기운 없어'라는 말을 남발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심각하게 경고장을 날렸다.

운. 동. 하. 라. 고.


남편은 4년째 축구를 한다. 조기축구가 아니다. 근처에 있는 전 국가대표가 운영하는 축구교실에 성인반으로 등록하고 1년 동안 기술을 제대로 배우더니 이제는 센터의 자리에서 자신보다도 몇 살 어린 전 국가대표와의 몸싸움에도 지지 않는 공격수로 변신했다.


나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지만 더 싫었던 주말 아침 유일하게 가능했던 꿀 늦잠을 포기하고 토요일 새벽 6시에 내 남편이 그걸 한다는 것이다. 나는 옆에서 뭔 짓을 해도 자는 청년이 아니다. 새벽에 내 단잠까지 앗는 남편의 지런스러움이 짜증이 났다. 부부가 같이 느지막이 햇살이 깊숙이 들어올 때쯤 천천히 일어나 여유롭게 모닝커피를 마시는 중년의 아침을 꿈꿨건만 당연히 포기해야만 했고 금요일 밤은 아예 각방을 쓸까 심각히 고민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토요일 새벽마다(첫 2년 후부터 현재까지는 수요일 저녁에도 간다!) 나의 비난과 핍박 속에도 굴하지 않고 남편은 4년을 그렇게 축구장에 갔다. 내가 깰까 봐 불도 못 켜고 주섬주섬 죄인처럼 (?) 유니폼을 입고 가방을 들고 도둑처럼(?) 재빨리 나간다.

 

반전은 지금부터다. 주말에 늦잠을 선택한 나는 저질체력의 대명사인 중년 여성이 되었고, 50세의 남편은 전 국가대표의 칭찬을 한 몸에 받는,

이 동네에서 축구 다크호스로 떠올라 30대에게도 지지 않으며 20대 청년들과 게임에도 빠지지 않고 축구를 즐기고 있다. 경기가 끝나고 집에 컴백할 때면 현관에서부터 오늘은 자신이 몇 골을 넣었는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자랑을 한다. 잘했다고 엉덩이를 두드려주면 높아진 자존감으로 내 비위를 기꺼이 맞춰주기 위해 커피물을 끓인다. 몇 년째 대 먹는 커피공장의 원두커피가 이내 편의 유려한 손놀림에 가루가 되고 쓸려 내려가며 또르르또르르 노래를 부른다.


주말에 낮잠을 자던 습관도 축구를 한지 첫 1년이 지나니 사라졌다. 이건 좀 놀라운걸!남편의 체력이 놀랍게 좋아진 또 하나의 증거다.

꾸준함으로 찬란한 열매를 맺은 남편이 운동을 하라는 말에는 그래서 힘이 들어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할 말이 없었고.


"품위유지비는 왜 안 써.(남편이 매달 내게 따로 입금하는 품위유지비 이야기는 나의 매거진 '바람 같은 여자 산 같은 남자'에 실려있다.)

인생의 품위는 건강해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거야. 운동은 돈을 따로 써도 될 만큼 중요한 거라고"

성인 축구교실 회비는 월 10만 원이었다.


나는 말이다. 아직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데이트 자금과 시간을 투자하기 싫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여전히 운동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실은 더 진실을 파고들면 아프다. 이미 살면서 헬스장에 돈을 갖다 바친 것만 생각해도 자다가도 이불 킥이니까. 상처가 있는 사람은 더 돈을 못쓴다.)




"나만 건강하면 뭐하냐고"

남편의 말은 아직 안 끝났다. 그리고 이번엔 가슴을 울렸다. 남편은 내가 두 아들을 낳은 후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얻고 매일 씬지로이드를 복용하는 사람인 것을 13년째 속상해하고 있다.

1월이 가기 전에 어떤 운동을 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서 주말 가족회의 때 발표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래서 어떡하지 하던 차였다.


시작노트의 저자이고 '경험 수집 잡화점'이라는 다양한 온라인 모임을 운영하는 피터님의 재미난 광고를 보게 되었다. '운동 심리학자와 함께하는 운동습관들이기'에 가입하라는.

운동 심리학자라고? 운명처럼 은혜처럼 내게 다가온 10명 소수정예만 모인다는 그 모임에 호기심 생겼다. 그리고 운동 심리학자라는 단어에 홀리듯 회비를 입금하고 막차를 탔다. 어차피 코로나로 홈트의 시절. 홈트의 맹점인 꾸준함을 도와줄 매일 인증시스템과 주 1회 전화 코칭을 통한 밀착 케어가 병행다.나의 선택이 흐뭇했다.


아 역시 괜히 운동 심리학자가 아니었구나

3주 차 통화였을 것이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던 날이.


그 눈물 속에서 맞벌이를 하느라 늦은 밤까지 돌아오지 못하는 엄마 아빠를 기다리면서 꿀짱구 포테토칩 양파링을 뜯어먹어치우며 허전함과 외로움을 채우던 8살 나를 만났다.

20대 미친듯이 일하던 시절 어쩌다 방송이 없던 휴일이면 집에서 종일 누워 TV를 보면서 그래도 다이어트는 해야 한다며 세끼 밥은 굶고 뻥튀기만 먹던 나도 보았다. 내몸의 내면아이는 거기
그리고 거기에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먹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였다. 오늘은 닭볶음탕이 먹고 싶고 내일은 돈가스가 먹고 싶고.

그러나 생활력이 당체 없으셨던 아빠 대신 고된 일을 하느라 엄마는 그런 딸아이의 욕구를 채워주기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육개장을 한 드럼통을 끓여놓고 일을 하러 나갔다.

우리 남매는 그 개장을 거의 일주일 내내 먹었다.

처음엔 맛있었는데 데피고 또 데피니 갈수록 짜지는 바람에 숟가락을 조용히 내려놓고 생라면을 불에 구워 먹었다.

맛이 기가 막혔다


왤까? 나는 지금도 음식을 고를 때 매번 심각하리만큼 좀 신중하다.

반면 남편은 배만 채우면 된다.

내가 뭐가 먹고 싶다고 하면 '와 신기하다 어쩌면 그렇게 먹고 싶은 것이 있지?'라며 웃는다.


평생 살림만 하셨 이제는 운명하신 전라도 출신의 시어머니, 매끼마다 손수 찌개와 국을 끓이고 매번 손이 많이 가는 당근과 감자를 갈아 부침개를 하시는 등 난이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음식을 하실때면 꼭 무림고수를 보는것 같은 경이로움을 느꼈다. 리고 하나같이 맛이 기가 막다.(근데 찌개가 있으면 국은 굳이 없어도 될텐데 어머님은 매번 꼭 두가지 다 상에 올리셨던 것이 아직도 이해가 안되고 신기하다)

그래서 남편은 음식에 결핍이 없는 걸까?

식당에서 메뉴 선택에 실패해서 맛이 없다고 느끼면 세상을 다 빼앗긴 것처럼 구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때가 되었으니 먹는 거지 뭐 라며

메뉴에 목숨 따 걸지 않는다.

뭘 먹어도 어머니 밥상의 기억이 이기니까

그러는 것일까?


대신 나는 되게 쉬운 여자이기도 하다.

화가 나있어도 맛있는 것 한 끼 먹여주면 게임 끝.

마음끝까지 다 열어 보여준다.

남편은 나에게 '예민하게 생겨가지고 의외로 심플해서 좋다'고 말하면 죽으니까 그렇게는 말을 못 하고, 나의 단순함을 하하하 거리며 즐긴다.



여하튼.

"몸에게 물어본 적 있으세요?" 그 문장 하나에

내 마음이  내 글이 이렇게 길어졌다. 무슨 나의 몸 관련 일대기를 쓰는 기분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눈물이 길게 이어졌던 것만큼 할말도 많았던 모.


"미안해. 내 몸아. 네가 어떤 상태든 상관없이 

내 맘대로 원하는 욕구를 채우고 공허함을 메꾸려 먹어대고 때론 하나도 안먹어서 미안해."


그렇게 그날의 운동 일기를 쓰며 나의 몸의 내면 아이를 만난 순간 기록해두었다.


그리고 1센티미터도 움직이기 싫어 내 몸을 바닥에 쇼파에 책상앞에 한없이 붙이고 있었던 수많은 시간들에 대해서도 근력없는 내 몸에 사과했다.


마음의 내면아이가 있 몸의 내면 아이도 있구나.그것을 알게된 기쁨이 다.


이제 '운동심리학자와 함께하는 매일운동하기' 인증 한달이 지났다.

운동할때 거울을 보기 시작했다.

해야한다는 강박이 아니라 내몸의 움직임을 관찰하고(다리운동을 하면서 다리를 쳐다보는 경험이 내게는 처음있는 일이라면 믿을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즐기시작했다.

동도 음식 메뉴고르듯 즐겨주자.

이것은 실망시키는 법이 절대 니 걱정말고.


나는 1기를 끝내고 2기도 이어서 신청 

몇 안되는 사람이 되었다.


띵똥 이 글을 마무리하는데 신기하게도 운동코치 김예림저자가 보내준 신간이 도착했다!소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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