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뜻한 스피커 Jun 11. 2021

끈기 없는 인간이 성실한 인간과 잘 사는 방법

성실한 인간은 책을 내고, 끈기 없는 인간은 책을 쓰게 했다.

(읽을 때 주의사항: ㅈㅅ 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끝까지 읽는다면 재미와 의미를 가져갈 수도 있다!)


"내가 남편과 결혼한 이유 성실해서인 거 알지?"


 오늘도 뻔한 나의 남편 이야기에 친한 지인들은 백번 천 번 공감한다는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눈망울에는 감탄을 가득 담고서. 이유가 있다.

 

 첫째, 결혼 전 오랫동안 집안의 극심한 결혼반대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버텨내부모님을 설득해 나와 결혼한 것은 사랑 때문인 줄로만 알았으나 그의 끈기 덕분이었다. 나? 나는 자존심에 빠르게 금이 가버려 골백번도 더 헤어지자고 했었. 심지어 늘 변함없는 그 남자가 질려서 어떻게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바람처럼 사라질 수 있을까 궁리했었 여자다.

나는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사랑하는 것에도 끈기와 관련이 있음을.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그때 그는 마치 우리가 결혼하는 것이 기정사실인 것 같은 태도로 나를 대했다. 응? 뭐지? 이 믿음은?

그것은 알고 보니 자기 자신을 믿는 믿음이었다. 어쩌면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이 이렇게 높을 수 있을까?

나는 레벨부터가 다른 그의 높은 자존감 앞에 근거 없는 자존심은 꺾기로 했고 못 이기는 척 결혼했다.

 

 첫째, 원래 남편은 매사 조급 한 법이 없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적으니 자기 페이스를 흔들림 없이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뭐든 매일 조금씩 공을 들이며 기다리다 보면 때가 차매 목표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연애할 때는 그 목표가 운 좋게도 나였던 거다. (망설이지 마라 비웃으면 된다)


 둘째, 결혼 후 매일 20년 넘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다이어리를 쓰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침에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와 쓰러져 자기 바쁜 30대 40대, 뭐 크게 다를 것도 없는 일상 속에서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을 거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거기에는 매일의 투두 리스트들을 적을 뿐만 아니라, 하루를 돌아보며 동그라미 세모 엑스 성공 퍼센트 수치까지 표시해가며 셀프 피드백도 한다. 그날그날 만나는 자신의 고객들의 인상과 대화의 핵심을 나타내는 메모도 적혀있고 가족들을 위한 행사나 소소한 메모도 매월 매주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내 눈엔 일중독으로만 보이던 남편에게 두 아들과 좀 더 놀아주라고 소리를 지르 그의 다이어리에 바로 내용이 추가된다.

주 몇 회 시간은 얼마큼을 배정하여 두 아들과의 대화시간과 놀이시간을 진행할지 심지어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까지도. 다이어리에 업데이트된다.


 이쯤 되면 좀 인간미 없고 징그럽게 들릴 수도 있겠다. 나도 그랬거든. 매사에 영혼이 없다는 둥 성의가(?) 없다는 둥 시비를 걸다. 정직하게 말하면 그때는 내가 불안정한 심리상태여서 그냥 다 모든 것이 꼴 보기 싫었던 것 같다.


나는 직관적이고 상황판단은 빠르나 즉흥적이고 감성 지상주의 우뇌형이다. 나에게 실용적인 유익을 많이 주는 좌뇌 인간형의 남편에게 지금은 무척 감사해하며 살고 있다. 예상이 안 되는 일은 절대 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나를 목 잡고 뒤로 넘어가게 하는 일이 없었던 덕분에 나는 어쩌면 수명 상당히 길어졌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밤. 남편이 그날도 다이어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날짜별로 별표가 비 정기적으로 보이길래 물어본 적이 있다.


"이 별표는 또 뭐야?"

"아 그거 내가 자기 안아준 횟수"


"........"


그 뒤로 나는 그의 다이어리를 보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나의 아빠는 말수가 무척 적으셨다. 하지만 독서도 좋아하시고 글도 글씨도 멋지게  쓰셨으며,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친구가 좋아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서, 툭하면 집에서 사라지셨다. 그런 날과 그런 날이면 새벽까지 술을 잔뜩 드시고 들어오곤 하셨다. 어릴 적의 나는 그런 아빠가 나름 꽤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늘 얼굴이 어두웠다. 나는 나의 아빠의 모습을 많이 닮아있다.


엄마가 그랬다. "너는 얼마나 좋냐. 네 남편이 너를 답답하게 하는 법이 없으니" 그 말은 맞았다.

 

 셋째,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남편은 본인의 선택으로 시작한 일은 그것을 잘할 때까지 하는 습관이 있다.  

나는 질릴 때까지만 하는 습관이 있고.

 

"캬 내가 오늘 전 국가대표를 제치고 골을 넣었어!"

"뭐라고? 진짜? 대박!"


허풍이 아니다. 남편이 전 국가대표가 운영하는 축구클럽에 들어간 지 만 4년쯤 되었다. 남편이 나타나면 20대는 기술 부족으로 30대 이상은 체력 부족으로 상대가 안되었다. 매주 수요일 저녁과 토요일 새벽에 출장 때를 제외하고는 지난 4년 간 결석 한번 없이 축구를 해온 그는 이제  50이다. 다른 40대 50대는 10분만 뛰어도 하늘이 노랗다며 벤치로 나가는데 꾸준히 길러온 그의 체력은 운동장에서 빛이 난다. 특히 전문적인 발재간은 전 국가대표에게 이제 더 배울 것이 없으시다고 수차례 인정받았다는 사실. (대단해요 나의 아저씨)

 처음 시작할 때 개인 레슨을 하겠다는 그를 보고 무슨 축구를 그렇게 진진하게 하냐고 하니 못하면 재미가 없다며 축구를 잘하고 싶어서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것이다.


"잘해야 재밌단 말이야. 못하면 재미가 없어. 성질만 버려" 함께 그 축구클럽에 있다가 매월 회비 10만 원이 아깝다고 무료 조기축구회로 갈아탄 한 친구가 얼마 전 다른 곳에서 만나 축구를 하는데 깜짝 놀라며 한 말이다.


"뭐야 왜 이렇게 잘해. 맨날 수비만 하더니 이제 완전 스트라이커네. 배운 축구는 다르구먼"하고 다시 축국 클럽에 재 등록하는 일도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남편의 이야기고 나는 그렇지 않다.나는 내가 재미있어야 성과가 나는 전형적인 똘끼 스타일.

이런 나도 살아가는 방법은 있다. 남편과 비교해 끈기가 없다고 스스로 자책했던 시간이 많았다. 매번 시작은 하는데 중간에 그만두는 내 모습이 참 싫었고 그 싫다는 감정조차 질릴 때쯤 나는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 일을 프로젝트식으로 해보자.
종류를 조금씩 이리저리 바꾸어 가면서 4주 8주 12주 이런 식으로 데드라인을
숨차지 않게 정하고 거기까지는 최선을 다해 죽도록 해보는 방식이
바로 그런 것이다.
돌아보니 십 년 이상 그렇게 해왔다.
이제 프로젝트 인간형인 나도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남편 같은 인간형보다 나 같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 왔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하는 폭이 넓다. 그래서 나의 스피치 코칭 클래스들도 완수 기간 등을 낮게 잡고 좀 더 잘게 자르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잘 통하고 있다. 그  기간만큼은 집중하고 최선의 최선을 다하도록 몰입도를 계속 강조하고 있어서인지 만족도가 높고 연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오히려 많아졌다.




나의 코로나 프로젝트 중에 하나는
바로 남편 저자 만들기였다.


한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다. 스피치 코칭수업이 늘어나 정신이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남편이 그동안 첫 책을 출간하게 돼서 틈틈이 소소한 마케팅을 돕는 일을 했기에 더욱 여유가 없었다.

더 큰 이유는 남편을 꼬드겨 책을 내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자기는 할 수 있어!책을 쓸수있는 단 한사람이 있다면 나는 당신이라고 생각해"


책을 쓰는 사람이 흔한 시대이지만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밤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매일 몇 장씩의 글을 써 내려가는 일은 보통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나는 엄두가 안 지만 성실한 남편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살살 달래서 책을 쓰게 만들었다. 물론 글을 쓰는 1년 동안 나는 남편을 밤에 설거지 한번 시키지 않고 인내해야 했으니 나의 지분도 상당하다고 생각된다.


책이 나온 지 이제 한 달이 넘어간다. 마케팅에 게으른 출판사를 만난 것이 아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류에서 주간 1위를 몇 번 차지하고 계속 3위안에 드는 성과를 보이는 것이 놀랍다. (오늘 보니 8위다. 광고를 좀 하긴 해야겠다^^) 성실한 남편을 잘 써먹은 것 같아 나는 무척 뿌듯하다.


어떤 분야에서 한 길걷고 있다는 것. 

명인 장인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요즘에는 예전만큼의 가치로 쳐주지는 않지만 얊팍하지않고 깊은 맛이 나는 전문성은 다 그런 것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멘토들은 다 이런 사람들이지 않은가.


잘 나가는 외국계 회사를 스스로 벅차고 나와 영업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보험영업에 뛰어든 지 18년 차. 남편은 이 분야에서 오래 하고 꾸준히 일을 하고 있는 명인로 통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보험영업을 시작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하는 환경에서 남편은 빛이 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제자들이 남편에게 배우고 싶어서 줄을 선다.

사람을 살리는 자존감 높은 컨설턴트의 사명은 남편의 삶의 철학에서 나온다고 같이 사는 자로서 감히 증명한다.


책 제목이 정석이라니 딱 그같다


남편의 책 쓰기도 나에게는 프로젝트였다!

이번 프로젝트 일단 클리어!

보험관련책같지만 꼭 그렇지않다.리뷰들을보면 자기계발 브랜딩 커뮤니케이션스킬등에 도움을 받았다는 사람들.그리고 자녀교육에도 깊은 감명아 에세이인줄 알았다는 메세지도 많은것을 보니(대놓고 죄송합니다)그러하다.


한길만 파는 이분은 톡외엔 sns도 하나 없다. 길게 쓰는 책은 써내지만 짧게 쓰고 빠져야 하는 sns가 자신에게 너무 맞지 않단다. 아내인 내가 하는 것은 좋단다. 흠...





물론 나에게도 프로트식으로 통하지 않는 영역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관계. 내가 가장 꺼리는 인간 유형이 바로 '프로젝트 목적형 인간형'이다 자신과 관계된 일에 필요하고 목표가 있을 때만 관리하는 어장관리형 인간관계가 그것이다. 

요즘 sns에서 자주 본다.

그런 사람에게 버려진다고 해서 꼭 그만을 탓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무척 씁쓸하다.

그럴때는 자존감이 다치지않게 다시금 나의 강점에 집중하고 나의(타인의것이 아닌!) 우선순위를 계속지켜내는것이 최선이다.

결국  내면을 더단단하게 키워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괜찮다.인생은 8주 12주안에 답을 안내도 되는 나름의 길고 긴 프로젝트니까.

우리는 모두 우리의 인생에서 성실하게 잘하고 있거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인생이어서 다행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