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흘러가게 둘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 그다음에 할 일은?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코칭하는 스피치 코치다!
말을 코칭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만나는 것이라는 것을 어느 날 알아챈 나는 강사 스승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스스로 버렸다. (불러주시는 분들은 그것이 편하다면 물론 말리지 않고 듣는 나도 기분이 좋을 때도 많긴 하지만)그리고 나는 나의 정체성을 코치로 잡았다. 코치는 끌고 가지도, 끌려가지도 않는다. 상대방이 스스로 주도적인 삶의 주체가 되도록 공감과 질문을 하며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며 피드백을 한다. 요즘 한국코치협회의 공식 인증코치가 되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집중하고 있고 매력에 듬뿍 빠져있다. 다음의 이야기는 지난주 나의 교육동기 24살 푸른 그녀와의 '서로 코칭' 장면이다. 나는 이 날 환희로 벅차고 행복해서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아 그 부분이 가장 마음이 쓰이셨군요.
이 대화가 다 끝나고 나서 문영님은(내 이름이다)어떤 마음이 들기를 원하세요”
“자유로움이요. 그 사람이 나를 존중하지 않아도(아니 않는 것 같아도) 내가 나를 존중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고, 그는 그대로 응원할 수 있는 여유와 자유로움이요”
대학을 갓 졸업했다고 하니 24살 25살쯤 되었을까
그녀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코칭 교육'이 있던 둘째 날이었다. -첫날은 이렇게 어린 사람인데 전문코치가 되기 위해 배우는 모습에 '나는 저 때 뭣을 했던가' 상념 어린 마음이 들어 기특하고 부러웠을 뿐이고-
바르르 떨며 말하는 모습이 어른들 사이에 어쩌다 어색하게 끼어 앉게 된 아이 같다는 느낌이 잠깐 스쳐갔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몹쓸 선입견이었음을 금세 알게 되었다.
드디어 전체 실습 타임! 코칭의 고객의 역할을 자원해달라는 주최 측 요청에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여기저기 머리와 마음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녀는 서슴지 않고 손을 들고 낯선 사람들(줌 화면 30여 명) 앞에서 과감히 자신을 오픈했다.
강사 코치님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하며 그녀가 떨면서 뱉어내는 한 문장 한 문장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동안 해온 내면 싸움의 파편들이 아프게 느껴지긴 했지만 아름다웠다.
아 정말이지 우아한걸.
그녀는 자신의 어떠함을 깊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고민도 크겠구나 생각되었다. 그중 글쓰기와 말하기 소통에 관련된 고민이 컸다. 아 저건 내가 도울 수도 있겠다.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그녀와의 연결을 시작했다.
그녀의 고민은 더 깊은 곳으로 가고 싶은 것에부터 흘러나오는 질문이었다. 또한 타인과 세상과 간절히 연결되고 싶은 소망이었고 그것이 직업적 소명으로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인생의 작대기란 참!
나는 주최 측에서 선정한 그녀의 공식 비밀 마니또가 되었고 그렇게 교육 내내 깊이 그녀를 관찰하며 칭찬하는 사명이 추가되었다. 그래서 더욱 따스하고 디테일한 시선을 그녀에게 고정하게 되었다.
계속 이어진 우리의 인연은 마니또에서 서로의 과제 코칭 파트너로 이어졌다. 그래서 어젯밤 그녀를 일대일로(줌 화상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누가 계획적으로(?) 짜 놓은 각본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할 말이 없는 것은
너무 좋았다는 것이다.
그녀가 그녀의 세계가
그리고 무엇보다 영혼의 충만함을 느낀 사람도 유익을 얻은 사람도 바로 나였다.
그분에게 서운해서 소심한 복수를 하고 있는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으시군요. 그러면서도... 당신이 무시받고 존중받지 못하고 상처 받았으면서도
그런 그 사람조차도 이해하고 배려하려고 애쓰고, 성숙하게 대처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져요. 이 이야기를 더 해봤으면 좋겠어요
예리했다. 아 잠깐만 그런데 말이야.
이토록 공감받을 수 있다니 이때부터 터진 눈물은 잘 수습이 안되었다.
분명히 상대는 내가 꺼내놓은 단어들을 버리지 않고 다시 주으며 문장으로 만들어 내게 돌려주고 있는 것뿐인데, 그녀가 알아준 나의 마음의 '애씀'이라는 단어가 자기 자리를 찾고 고맙다고 울었다.
그리고 적어도 이 눈물의 끝이 밝을수 있겠다는 희망적 직감도 들었다.
우선 내가 쓴 단어들을 고스란히 그녀가 다시 사용한 것은 최고의 공감이었다.
마치 내 영혼이 나에게 해주는 공감같은 느낌이었다. 이것이 진짜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그녀.
그녀는 어떻게 이런 내 마음의 깊은 곳에 있는 단어를 나 스스로 말하게 했지? 그것은 그녀가 가진 영혼을 다한 코칭의 힘이었다.
아 매력 터지고 눈물 터지는 코칭의 세계여
이 푸르고 젊은 여자는 나를 코칭해주며 나의 영혼을 깊이 들여다보았고 울려버렸다.
나중에 피드백 시간에 그녀는 말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고.. 그랬던 것 같다고...
코칭의 도입단계에서 진실된 호기심을 보이고 '공감'에 함께 깊이 머물러주며 기다려주고
상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가 촛점을 잡고 정리될 때까지 적당한 침묵과 호흡할 줄 아는 것
그녀 나와 참 닮았다. 좋다.
이제는 내 차례! 나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흐트러짐 없이 시적인 문장들을 뱉으며 또박또박 말하는데 한눈에도 스피치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의 말이 자기자신과 조금 동떨어있다는 분리감이 느껴졌다. 진실성이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말을 하는 그 순간 자신감을 잃고 헤매는 그녀의 시선과 말은 내용의 확신과 생기를 떨어뜨렸다. 타인의 시선이 변수였다.
8살 때부터 이 부분이 힘들었다고 했다. 작가 지망생이기도 한 그녀는 다른 이들의 진실된 마음에 공감하고 그 마음에 머무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어쩐지. 그녀의 언어들은 이미 정리되었고 정갈하다 흐트러짐이 없고 똑 떨어진다. 그런데 불안하다. 편안하지 않다. 나의 말과 몸이 하나 되어 놀아야 되는데 그 문장에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갇히는 모습이라고 할까.
말과 글이 하나된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기 어렵게 하고있다.
실은 자신의 장점을 잘 알고있고 주변의 인정도 많이 받아왔지만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둔다. 그런 모습으로 너무 깊게 너무 오래 생각하니 무거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깃털처럼 가벼워진 내면의 자신의 모습을 원하고 있는 그녀는, 스피치에 있어서는 페르소나적인 확신을 가져도 된다고 이야기를 건넸다. 그 날 내 앞에서 그녀는 8살 어린아이 같은 맑은 얼굴로 얼굴을 찌뿌렸다 폈다 하며 한참을 울었다.
우리는 그 밤늦도록 서로를 인정하고 축하하며
작별인사를 하기가 아쉬워 서로를 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