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글: 언컨 택트 교육시대에 꼭 필요한 홈스쿨링 정신! 그렇게 정신줄을 붙들고 사는 부모와 아이들을 만납니다. 행복의 비결? 그것은 자. 기. 만족입니다.
진호(가명) 엄마를 안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사람이 시원시원하고 대화 후에는 시원한 탄산수 한 잔을 들이킨 것 같은 갈증해소가 느껴졌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잘 발견하고 표현할 줄 알며 자신에 대한 믿음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종종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참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되는 몇 안 되는 사람.
편하고 호감이 갔다.
나를 그녀의 아들 진호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 특강' 강사로 초청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후 개인적 관계로 이어졌고 얼마 전 진호엄마가 상의할 것이 있다며 집으로 방문했다.
함께 우리 집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내가 ‘자녀교육’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고 하니
자신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아들 진호의 이야기를 꺼냈다. 고마웠다.
진호는 현재 19살 고3이다.
나는 ‘돼지엄마’ 였어요
진호는 7살에 검사한 지능검사에서 우리나라 0.06%에 드는 영재였다.
3세 때는 세계 영재학회에 이름이 정식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기저귀를 떼기 전에 한글과 영어를 뗐다니까요”
진호엄마의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아 재차 물어보니 겨우 24개월을 넘긴 3세 아이가 벽에 붙어 있던 한글과 영어를 보면 읽어내고 도서관에서 엄마가 책 제목을 대면 척척 찾아오곤 했다는 것이다. 3세에? 그렇다!
6세 때는 영어유치원에 보냈는데 이름만 대면 다 안다는 과정이 빡빡하다고 소문난P영어유치원
이었다.
유태인식 영어교육을 한다고 부모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라고. 진호는 그곳에서 매달 보는 영어 시험에서 1등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단다.
(이 학원이 어째서 유태인식 교육법이라고 하는지는 들으면서 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또한 진호는 7살에 한자 3급을 획득했고 초3 때는 급기야 토플주니어 시험성적이 실버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실버 단계는 최종 단계인 5 레벨의 바로 아래의 4 레벨로 900점 만점에 785점-840점)
“우리나라에서 공부 잘하려면 초6전에 이미 고3 때까지의 진도가 다 나가 있어야 해요. 그래야 특목고를 들어갈 수가 있으니까요. 돼지엄마 아시죠? 제가 바로 그 유명한 돼지엄마였다니까요. 주변의 엄마들이 공부와 관련된 사교육의 모든 정보를 제게서 얻어가려고 줄을 서고 늘 전화기에 불이 났었지요.”
돼지엄마란 뜻은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다. 교육열이 매우 높고 사교육에 대한 정보에 정통하여 다른 엄마들을 이끄는 엄마를 이르는 말로, 주로 학원가에서 어미 돼지가 새끼를 데리고 다니듯이 다른 엄마들을 몰고 다닌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부 종합전형이 생기면서 지금은 사라지게 된 말이다.)
홈스쿨링을 하며 별나라의 색깔대로 아들들을 키우는 나로서는 거의 접한 적 없는 생소한 말이었다. 어릴 적 나의 엄마가 막내인 남동생이 마냥 귀여운 순간에 "돼지야"라고 부르던 기억만 남아있던 나는 대충 그런 의미가 아닐까 짐작했다가 진호엄마의 설명을 듣고 웃음이 풉 터졌다. 나진짜 무지하구나!
그런데 사실 더 놀랐웠 것은 지금의 진호엄마의 모습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과거의 타이틀이다.
“아빠 나 이제 공부 안 해. 아무것도 안 해”
영재 진호가 또박또박 뱉어내는 폭탄선언은 초3 열 살 봄이 되던 날 아침에 일어난 일이었다.
진호는 아빠를 불러 앉혀놓더니 이렇게 선언하고는 그로부터 입을 오랫동안 다물어 버렸다.
이것을 남편에게서 전해 들은 진호 엄마는 당연히 큰 충격 속에 빠졌다.
엄마 눈에는 아무 문제없이 잘 따라오고 있던 아들. 늘 좋은 성과만 보여주던 아이의 말이 진담인지 아닌지 조차도 가늠이 안되고어린아들이 한 말 솔직히 믿지 않았다고.
“진호가 차마 엄마인 나에게는 말을 못 하고 아빠에게 그 말을 했다는데 저는 믿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죠. 그런데 곧 알게 되었어요. 아이가 괜한 소리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시험만 치면 100점만 받아오던 진호가 그 이후 매번 모든 시험마다 11점. 그러니까 진호 말로는 1번부터 4번부터 한 번호로만 쭉 찍어서 시험지를 제출하니까 거의 매번 11점이 나 오더라는 거죠. 100점 만점에 줄곧 11점.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죠. 태교 때부터 가장 비싸고 좋은 교구를 사대고 아이가 10살이 될 때까지 결혼 패물까지 싹 다 팔고 집안의 경제력을 총동원해서 공부를 시켰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억울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정말"
엄마의 모든 지극정성과 열성이 오히려 아이를 병들게 하고 그토록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는 줄은 추호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초1 때 담임선생님이 진호가 수업시간에 멍하니 앉아 먼 산만 바라본다고 말했을 때..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말끝을 흐리는 진호 엄마의 눈빛이 순간 9년 전 당시로 돌아간 듯 아득해진다. 긴 한숨을 뱉어낸다.
진호의 변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엄마는 진호의 폭탄선언 이후 몸져누웠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어느덧 중2가 된 진호는 급기야 학교의 일진 소리를 듣는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다. 그저 매일 안전하게 집에 들어오는 것에 감사하도록 엄마의 마음을 가난하게 만들었다.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고등학교 1학년 된 어느 날 진호의 담임에게 전화가 왔다고 한다.
아이들과 어울려 담배를 피우다가 걸렸다고.
세상에서 상위 몇 프로 안에 들어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영재 엄마가 졸지에 일진의 엄마가 돼버렸다.
하지만 진호엄마는 살길을 찾기 위해 강한 신앙의 힘을 의지했고 깊은 자기 성찰의 시간을 통해
무척 성숙해지고 단단해져 있었다.
유아시절부터 진호를 강압적으로 고문하듯이 공부를 시켜온 엄마 아빠는 아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으며 드디어 중3 여름 아들에게서 ‘엄마 아빠 용서할게요’라는 말도 들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부모 자신과 아이와의 관계가 편안하고 안정감 있게 회복되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마음은 그때의 감정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젖은 눈가를 연신 훔쳐냈다.
다시 담임의 전화를 받고 학교에 간 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이가 담배를 피우다가 교칙을 어겼다는 말에 죄인 된 마음으로 학교에 들어섰죠. 상담실도 아니고 교무실로 부른 담임선생님에게 불편한 마음이 느껴졌지만 도리가 없었죠. 부끄러움은 부모의 몫이니까요. 그런데 담임이 대화중에 진호와 친구들을 무시하는 말투로 계속 선입견을 갖고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담배를 피우고 교칙을 어긴 것은 잘못한 것이 맞지만 (그 뒤로도 진호의 흡연습관 개선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 이유 말고는 당시 잘못한 것이 없었으니, 다른 것들까지 도매급으로 좋지 않은 시선으로 판단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껴졌지요. 선생님의 반복되는 말씀을 듣다 듣다 제가 그랬어요.
선생님 말씀을 잘 알겠고 정말 죄송합니다. 징계를 달게 받고 이런 일이 없도록 아이를 잘 가르치겠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조금만 조심해 주세요. 흡연 외에 다른 사안들은 확실하지는 않은 것 같으니 좀 더 알아보시고 이야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진호와 친구들도 귀한 아이입니다. 한 명 한 명 다 소중하고 미래가 창창한 아이들입니다.”
아! 듣는 내 속이 다 후련했다. 엄마가 이 정도는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록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이런 엄마를 둔 자식들은 얼마나 행복하고 든든하고 자존감이 훼손되지 않고 지켜지게 될까!
무슨 용기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는데 정말 다행인 것은(솔직히 믿어지지 않는 것은) 그것을 들은 담임선생님의 반응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예의에 벗어나지 않았지만 담담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진호엄마의 진심이 통했던 것 아닐까?
겸손하지만 패기 있게 말하는 진호엄마의 말에 담임선생님이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이내 어머니의 말씀이 백번 맞다고 인정해주시더라는 것!
그 뒤 오히려 담임선생님과 개인적으로까지 친해졌고 지금까지도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진호 엄마는 영재임이 분명해 보이는
어린 아들에게 엄청난 양의 공부를 시키고
'돼지엄마'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후회로 가득한 자녀교육을 한 엄마였다.
하지만 무너졌던 자리에서 다시 털고 일어나
엄마로서 엄마의 정체성을 찾고중심을 다잡고는
선수답게 행동했다. 먼저 아들이 평생 자존감만은 잃지 않도록 당당하게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받아주는 엄마가 있다는 것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면 아이의 긴 인생 중 지금쯤의 일탈쯤이야 훗날 무기가 될 스토리가 될 뿐이다!
진호 엄마는 그렇게 자신을 '멈출 수 있게 해 준' 아들에게 고맙다고 진심을 담아 고백한다.
진호는 방황을 끝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찾았다.
현재 호텔경영인이 되겠다는 야심 찬 꿈을 키우며 호텔전문학교의 예비 고3이다.
계획도 구체적이고 꿈을 이루기 위한 고되고 반복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고 매일매일 성실하게 하고 있다.